매일신문

"여보 힘내!"…아내에 바치는 '사랑의 노래'

위암 투병생활 허점자씨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 안타까웠소~♬('아내에게 바치는 노래' 중에서)."

이따금 일이 힘들거나 스트레스가 쌓일 때면 아내(허점자·39·서구 평리동)와 함께 노래방에 가곤 했습니다. 노래 부르길 좋아하는 제(배달종·48)가 마이크를 잡으면 아내는 박수로 화답하곤 했지요. 주위 사람들은 저희 부부 금슬을 부러워했는데….

제 직업은 고물상. 공터를 빌려놓고 제가 폐품을 주워 오면 아내와 함께 분류해 내다팔곤 했지요. 일이 힘들 법도 하건만 아내는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엔 늘 저와 아들들(중 2년·고 2년) 생각뿐인 사람이었습니다. 뒤를 돌아보면 늘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아내는 제 든든한 후원자였어요.

지금 아내는 위암 말기로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지난 해 8월 다리가 퉁퉁 부어올라 병원을 찾았더니 위암이라더군요. 하늘이 노래졌습니다. 한 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아내가 이 지경이 되도록 모르고 있던 제 자신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어요.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며 돌아다니더니 정작 제 집 도끼자루가 썩는 것을 몰랐던 겁니다. 제 일보다 자율방범대니 새마을협의회에 발을 들여놓고 홀몸노인, 결식아동을 챙겨주느라 늘 바빴거든요. 얼마 되지 않는 벌이에 집에서 돈을 가지고 나가 봉사활동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아내 입장에선 제 행동이 불만스러웠겠지요. 하루 10시간씩 일하면서도 동네에서 무슨 일을 벌인다고 하면 쫓아나가는 절 보면서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속이 타들어갔겠지만 아내는 그런 저를 질책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아내의 병은 아무래도 저 때문에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남들은 저희 부부더러 '잉꼬 부부'라는데 그 말을 들은 것도 모두 아내 덕분이에요. 무슨 일을 하건 저를 믿어줬으니까요. 생일 선물로 값비싼 것을 해준 적은 없지만 속옷이라도 사다 건네면 아이처럼 좋아하던 아내. 제겐 세상에서 가장 예쁜 사람입니다.

아내는 아직 자신의 병명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도 모를 겁니다. '대장과 간이 좀 안 좋은데 치료만 잘 받으면 곧 나을 거다'라고 제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병실 주위에 모두 암 환자이니 짐작은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희망을 주고 싶은 제 마음을 헤아려 아무 말이 없는 것 같네요.

아내는 가끔 '당신이 세상을 먼저 뜨면 나도 함께 가겠다'고 말하곤 했지요. 웃으며 '진짜 그러겠냐?'고 되묻곤 했지만 이젠 그 말 한마디가 제 소원이 됐습니다. 전 일찍 죽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 아내도 그 말을 꼭 지키길 바랍니다. 아직은 갈 때가 아닙니다.

아내가 병마를 이겨내는 날, 쑥스러워 아직 못해 준 말을 들려줄 겁니다. '당신처럼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고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아내, 내가 부르는 노래에 박수를 쳐 주던 아내 모습이 그립습니다.

배달종 씨는 수척해진 아내를 바라보면 목이 멘다. 5천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 때문에 전세 보증금을 날린 채 월세방에 살게 됐고 50여 평 되던 고물상 터도 좁은 곳(10여 평)으로 옮겨야 했지만 아내만 일어날 수 있다면 상관없는 일이다.

"아직 살릴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지금 가기엔 너무 젊은 나이잖아요. 생각하긴 싫지만 만약 아내가 세상을 뜨게 된다면 세상 모든 병을 다 안고 갔으면 좋겠어요. 아내처럼 아픈 사람이 더 생기지 않게."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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