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가에서-공간(空間)의 문제-실재, 실체

지독한 황사가 봄비에 씻겨가고 맑은 하늘 그 아래로 우뚝 선 푸른 앞산이 정겹다. 변함없이 그 자리에서 계절, 시간의 역사를 받아들이는 늠름한 모습.

시간과 더불어 우리를 완벽하게 통치하는 또 하나의 지배자는 공간이다. 시각이라는 무기를 통하여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을 확보한다. 분명히 보이는 것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 자신을 포함하여 공간 속에 있다. 그러나 공간이 실체(實體)로서 실재(實在)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허상이다.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간 그 자체가 확실하게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눈에 이렇게 보이는데….

우리에게 우주만물은 전체 공간 속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형식으로 구별된다. 결국 공간이 없어진다면 구별은 무의미해진다.

일상의 눈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전자 현미경을 통해 확인한다. 천체망원경을 통해 빛이 200억 년을 걸쳐 달려온 거리만큼의 공간을 확인한다. 블랙홀로 빨려들어간 공간을 과학자들이 추론해 보여준다. 아무리 그래도 공간의 확실성의 출발은 어디인가 우리의 눈이다. 우리의 눈은 무엇이 확실성을 보장할 것인가? 여기서 호접몽(胡蝶夢)이 출발한다. 의식과 과학의 발전은 공간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구별, 명확한 구별이라는 비를 맞고 자라는 나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간(空間)은 허무(虛無)한 것이다.'빈 것의 사이는 비고 없다'는 말이다. 사물을 미분하면 끝없이 작은 공간을 만들면서 영원히 미분된다. 과연 공간은 있는 것인가? 그 위에 사물은 있는 것인가? 시간의 쌍둥이 동생 공간은 이성의 제국의 전위부대이다.

앞산은 조금씩 부서지고 있다. 지금 이 신문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시간을 타고 자신의 독점적 공간을 내어 놓고 있다. 슬프지 아니한가. 그러나 구별의 공간 인식을 내려놓는 순간 우리는 우주생명의 전체를 받아들일 수 있다. 삼라만상은 원래 구별이 없는 그래서 이별도 없는 하나이다. 나는 그대로 전체일 뿐이다.

고양이 소리에 놀라 눈을 뜬다. 도대체 여기는 어느 별인가?

황보 진호 하늘북커뮤니케이션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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