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신라의 자장스님은 선덕여왕에게 탑의 건립을 요청한다. 여왕은 대신들과 숙의 끝에 백제의 장인 아비지(阿非知)를 초청키로 한다. 당시 백제는 이미 쇠퇴한 기운으로 수많은 장인들은 갈 곳을 찾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탑은 목탑으로 높이는 9층. 자그만치 80여m. '9'라는 숫자에는 이웃 아홉 나라의 침입을 막자는 의미도 있다. 아비지가 200여 명의 소장들과 우리나라 최초의 목탑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씀은 "게으름을 피우지 말라. 그러면 수행을 완성하리라"였다. 아비지도 아마 그런 각오로 목탑을 다듬었을 것이다. 지금 그 자리인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에는 전 같으면 지날 때마다 누렇고 늘 뎅그렇기만 했던 탑자리가 빛이 나는 듯하다. 탑자리의 외두리기둥 초석 28개. 안두리기둥 초석 36개, 가운데 찰주로 받치던 큰 심초석 등 당시의 흔적들은 여전히 묵언 중이다.
▲몽골의 말발굽으로 절은 사라졌다. 다행히 심초석에서 금동사리함이 발굴돼 그 사리함의 3면 안팎으로 탑지가 새겨져 황룡사의 규모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정부와 경주시가 나서 복원의 꿈을 펴고 있어 다행스럽다. 어제 경주 힐튼호텔에서는 '황룡사 복원 국제학술회의'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는 각계의 전문가들이 그동안 연구한 결과물로 활발한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지금은 프랑스 국립박물관에 있지만 금속활자로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책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을 찍어낼 때 사용된 흥덕사자(興德寺字)의 활자복원을 두고 한 때 그것이 '복원'이 아닌 '복제'라는 말썽에 휘둘렸다. 사용한 재료가 천연재료가 아니라는 등 학계의 반응이 싸늘해 최근 다시 만들어 복원을 주장한다. 이는 문화재 복원에는 엄격한 고증과 엄청난 노력이 뒤따라야 비로소 제 가치를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 실례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9층 목탑을 비롯 황룡사 복원 작업도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을 추구해야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복원 기간을 30년으로 잡기도 했지만 그것이 무슨 대수일까. 찬란했던 신라의 웅비가 미리부터 떠 올려져 기분 좋은 오늘 하루다.
김채한 논설위원 nam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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