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와이드 인터뷰] 내년 창업 80주년 박윤경 경북광유 대표

결국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내년이면 창업 80주년을 맞는 지역의 대표기업 중 하나이자 지난해 매출 2천500억 원을 기록한 경북광유㈜ 박윤경(50) 대표이사는 인터뷰 도중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경북광유를 상징하는 'KK' 로고가 새겨진 점퍼를 입고 있던 그는 슬며시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고,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왠지 모르게 서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회한도 밀려옵니다. 아버지가 어떻게 회사를 키우셨는지 알기 때문에, 또 그 회사를 지켜내기 위해 너무나 오랜 시간 힘들게 버텨왔기 때문에…."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경북광유'를 입력하면 백과사전에 기업 정보가 뜬다. 지난 1927년 대구오일상회로 시작한 뒤 1949년 경북광유 주식회사가 설립됐다. 당시 대구세무서 최초의 법인 납세번호를 부여받았다. 창업주인 고(故) 박재관 회장에 이어 2세 경영을 맡은 고(故) 박진희 회장에 이르러 사세는 급격히 팽창했다. 한 때 포항제철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양대 기업이었다. 외형뿐 아니라 납세액도 월등한 규모였다. 하지만 지난 1997년 박진희 회장이 간암으로 타계한 뒤 경북광유는 격변에 휩싸이게 된다.

박 회장 슬하에는 박 대표를 포함해 6녀가 있었다. 하지만 후계 구도도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세상을 등지자 자매들 사이에 이견이 생겼다. 이런 과정에서 적잖은 진통을 겪었고, 결국 자매들이 똑같이 나눠가진 지분을 박 대표와 맏언니가 사들여 50%씩 나누게 됐다. 그리고 지난 2002년부터 공동대표 체제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 하지만 결국 경북광유는 지난 해 10월부터 경북광유와 맏언니가 경영하는 한국광유로 나뉘었다. 이런 와중에 송사(訟事)가 잇따랐고, 마음 고생도 적잖았다.

서너 줄 문장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시련의 시간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벌써 9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아버지를 생각하면 어느 새 눈 앞이 흐려지는 것도 이 때문. 평범한 주부에서 경북광유의 대표이사로 변신한 박 대표의 인생도 파란만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회사 사무실도 한번 들러본 적이 없던, 약사인 남편 뒷바라지와 두 자녀 양육이 전부였던 그저 평범한 주부였다. 경북여고를 졸업한 뒤 영남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했던 그는 재무제표가 뭔지도 몰랐다.

"막막했죠. 하지만 아버지 회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만큼은 확고했습니다. 두 언니가 서울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사실 대구에서 장녀 역할을 했죠. 어머니도 계속 편찮으셨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참 겁도 없었다 싶습니다."

남 부럽지 않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결혼 후에도 돈 걱정해보지 않고 살았다. 160명 경북광유 가족들을 걱정해야 하는 대표이사 자리에 오른 지금, 그는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차라리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생활할 때는 흔히 말하는 명품 핸드백도 별 생각없이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대표 자리에 오른 뒤 백화점 가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주유소에서 시간당 몇 천원 씩 받으며 구슬땀 흘리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생각하면 결코 함부로 돈을 쓸 수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직원들과 종종 소주 잔을 기울입니다. 처음엔 술을 못마셔서 몰래 화장실에서 토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예요. 지금은 바짝 긴장하면서 마시면 소주 2병까지 가능합니다. 아직 직원들에게 취한 모습을 보인 적은 없습니다."

지금 박 대표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는 대학시절 연애로 만나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남편. 경영 전면에 절대 나서는 법이 없지만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아내에게 아낌없는 조언을 해준다. 박 대표의 딸(26)은 경북대 병원에서 레지던트, 아들(24)은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올해가 경북광유 제2의 도약을 맞는 원년이라고 했다.

"SK㈜와 함께 중국 진출을 준비 중입니다. 지분 참여는 물론 중국에 직접 경북광유 주유소도 만들 생각입니다. 아울러 80년간 경북광유를 아껴주신 지역민들에게 보답하는 다양한 방법도 강구 중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요."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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