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주둔 미 해병대가 자행한 양민학살의 진상이 밝혀지면서 이번 사건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포로학대사건을 능가하는 파문을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이라크 주둔 미 해병대는 당초 지난해 11월 이라크 서부 안바르주 하디타란 마을에서 순찰 도중 도로변에 매설된 폭탄이 폭발하고 이어진 교전 과정에서 15명이 사망했다고 보고했으나 이후 진행된 조사를 통해 해병대가 동료 대원이 폭사하는 바람에 흥분한 나머지 인근 민가에 난입, 부녀자를 포함한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 타임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등 미국 신문들은 당시 하디타 마을 주민들의 목격담을 인용해 해병대의 순찰 험비 차량이 폭탄 폭발로 1명의 대원이 즉사한 후 해병대원들이 인접 민가에 들어가 부녀자를 포함해 주민들을 무차별 살해했다고 전했다.
자체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미군 당국은 학살 가담자에 대한 살인혐의 적용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으며 미 상원은 이번 사건을 포로 학대사건을 능가하는 잔혹 행위로 규정, 진상규명과 책임소재를 밝히기 위한 자체 청문회를 추진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9일(현지시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또한 미 해병대 지휘부가 이번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미군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1면 머리기사를 통해 생존자들의 증언을 인용, 미 해병대가 민가에 들어가 19명의 양민을 학살하고 지나가던 택시에 총격을 가해 5명을 살해한 이번 학살사건의 전말을 상세히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히바 압둘라(여)는 오전 7시 15분쯤 들이닥친 미 해병대가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던 77세의 시아버지와 4세 조카를 포함해 7명의 가족을 무참히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압둘라는 시아버지가 가슴과 복부에 총을 맞았으며 시어머니는 등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면서 자신은 눈앞에서 남편이 사살되는 것을 본 시누이가 기절한 사이 5세짜리 아이를 데리고 피신해 화를 면했지만 시누이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고 말했다.
아홉 살짜리 이만 왈리드 압둘 하미드와 일곱 살인 그의 동생은 재빨리 침대 밑에 숨어 미군의 총격을 피했지만 가족들이 무참히 살해되는 장면을 모두 목격했다고 압둘라는 전했다.
압둘라는 미 해병대가 또 다른 민가에 들어가 3세에서 14세 사이였던 아이들을 포함, 유니프 살림 나사이프의 가족 8명을 사살했으며 다른 집에서는 20세에서 38세 사이의 남성 4명을 차례로 살해했다고 말했다.
니사이프의 집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사파 유니스 살림(13)은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진 그녀의 오빠 밑에서 죽은 척해 화를 모면했다면서 미군들은 가족들을 살해하기 전에 발로 차고 고함을 지르기까지 했다고 증언했다.
나머지 5명의 희생자는 택시를 타고 지나가다 미군에 의해 살해됐는데 희생자들은 18세에서 25세 사이의 학생 4명과 운전사였다고 주변 주민들은 전했다.
이번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미군 관계자들은 압둘라의 시아버지는 휠체어에서 손에 코란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살해됐으며 시어머니는 살해될 때 기도하는 자세로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한 일부 시신은 머리에 단 한발의 총상밖에 없었으며 학살이 일어난 다른 민가에는 주변에 탄흔 같은 교전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혀 이번 사건을 보복살인으로 결론 내리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이와 관련, 상원 군사위원장인 존 워너 공화당 의원은 ABC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 포로학대사건과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면서 군의 자체조사가 끝나는 대로 상원 차원의 청문회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존 머서 민주당 의원은 해병대가 자식을 품에 안은 채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한 여성을 냉혹하게 살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해병대가 하디타에서 무고한 민간인을 살해하고 이를 은폐하려했음이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머서 의원은 해병대가 사건 직후 일부 희생자 가족들에게 돈을 지급한 것에 대해 지휘부의 결정 없이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면서 해병대 지휘부가 학살사실을 알고도 은폐하려 한 것이 분명하다고 비난했다.
한편 머서 의원은 미 해병대가 지난달 26일 바그다드 서쪽 하만디야에서도 이라크 남자 한 명을 살해한 뒤 마치 교전이 있었던 것처럼 위장했다면서 현재 이 사건에 대해서도 군 당국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연합뉴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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