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자끼리 떠나보자] 하루만에 끝내는 청송 풀코스

여자들끼리의 여행. 일단은 망설여진다. 이런저런 걱정이 먼저다. 여간해선 마음먹기가 녹록치 않은 게 현실. 계획만 세우 두고 고민만 거듭 하다 결국은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이 좋은 계절을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는 일. 여자들끼리 떠나면 좋은 여행지를 소개한다. 일단은 가까운 청송이다.

우방타워랜드 마케팅팀의 김영희(34) 씨와 동료인 김미숙(31) 씨. 봄이 오는가 싶더니 벌써 저만치 지나버렸고 어쩌면 올해도 이렇게 그냥 지나는구나 싶은 안타까움이 더해가는 5월 말. 둘은 자신들 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서 봤던 풍경을 가슴에 담아두었던 영희 씨는 주산지를, 신록이 더해가는 계곡이 그리웠던 미숙 씨는 절골 트레킹을 필수코스에 넣었다. 남는 시간엔 달기약수탕에 들러보고 전통옹기 빚기 체험도 해볼 참이다.

일단 새벽에 출발하려던 계획을 접었다. 허리까지 물에 잠긴 왕버들 고목 사이로 피어오르는 새벽 안개…. 그런 태고적 신비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풍경을 보려면 꼭두새벽에 대구에서 출발해야 했다. 그보다 안개는 밤낮의 기온차가 큰 늦가을이라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에 출발시간을 늦췄다.

08:20 떠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즐거움. 들판의 풍경도,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도, 색깔이 짙어지는 산도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한껏 열어젖힌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출발이다."

09:50 북영천IC에서 내려 청송으로 가는 국도변. 생각지도 못했던 풍경이 반긴다.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 오리장림 맞은편은 한약재인 작약 밭이다. 지금은 색색의 꽃이 한창이다. 운이 좋다. 아무리 급해도 이런 풍경을 지나칠 수 없는 일. 차에서 내려 뛰어간다. 흐드러지게 핀 꽃들. 카메라부터 들이댄다. 찰칵 찰칵. 봄꽃여행을 떠나지 못한 한이 조금은 풀린다.

10:40 주산지에 도착했다. 산 중에 들어서있는 조용한 저수지. 이젠 청송여행의 필수코스가 된 곳이다. 저수지의 물이 빠져 왕버들이 수면 위에 제 모습을 다 담아내지는 못한다. 그래도 기이한 풍경은 사진에 보던 그대로다. 영희 씨는 바쁘다. 그렇게 와보고 싶어했던 곳이다. 이리저리 사진 찍기에 정신없다. 때론 모델처럼, 때론 유치하게…. 하긴 사진찍기도 빼놓을 수 없는 여행의 매력이다. "사진요? 싸이월드에 올릴 겁니다."

11:40 절골은 주산지에서 가깝다. 버스가 다니는 부동면 이전리까지 되돌아나왔다가 오른쪽으로 2.5㎞ 더 들어가면 매표소다. 매표소를 지나자마자 본격적인 트레킹은 시작된다. 울창한 길 오른쪽으로 물소리가 요란하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물소리에 섞여 새소리도 들린다. 절골의 매력은 초입부터 협곡의 비경을 보여준다는 것. 입구 쪽 세군데의 다리만 없다면 원시적 자연 그대로다. 물줄기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즐거움이 만만찮다. 호젓한 만큼 아직 사람 때를 덜 탔다. 미숙 씨가 계곡으로 내려서 깨끗한 물에 손을 담근다. 이곳 비경도 카메라에 담지않을 수 없다. 이리저리 포즈를 잡으며 둘은 어린아이처럼 즐겁다.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면 적당한 곳에서 돌아내려오면 된다. 산행복장이 아닌 둘도 굳이 계곡을 더 오를 필요성을 못 느낀 듯 했다. 이만한 경치면 충분하다는 투다.

12:56 청송에서 약수를 빼놓을 수는 없다. 목적지는 달기약수탕. 10여 개의 약수탕 중 상탕으로 향한다. 작은 정자 아래 바가지가 놓여있는 걸로 봐 약수탕인 듯하다. 바로 옆 개울가 노천에도 바가지는 놓여있다. 약수탕 주변은 온통 붉은 색. 약수에 철 성분이 많기 때문이다. 둘은 세 곳의 약수탕을 오가며 약수를 마신다. 보글보글 물방울이 솟아오르는 것도 신기하다. "톡 쏘는 맛이네요." 둘은 서로 약수를 많이 마시라며 권한다. "상대가 배가 불러야 내가 닭백숙을 더 먹을 수 있죠."

13:09 이젠 먹는 즐거움을 느낄 차례. 점심은 출발 전 청송 약수닭백숙으로 정해뒀다. 미리 청송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닭백숙 식당도 수배해뒀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식당 야외에 자리를 잡았다. 닭백숙이 나오자 역시 카메라부터 꺼낸다. "친구들에게 자랑해야죠. 멀리까지 왔는데…."

14:34 진보에 있는 전통옹기 체험장으로 가는 도중 송소고택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이곳에선 고택민박도 한다는데 미리 가보고 다음에 1박 장소로 점찍어 둘 참이다. 동네는 공사 중이다. 하긴 경북 북부지역은 유교문화권개발사업인지 뭔지 어느 곳 할 것 없이 공사가 한창이다. 멀리서 차를 세워두고 찾아갔지만 문이 잠겼다. 주인이 잠깐 외출했을까? 담장 너머로 안을 엿보고는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했다.

14:57 청송전통옹기체험장은 진보면소재지 직전에 있다. 오는 도중에 있는 한지체험장도 큰 유혹이었다. 들어가볼까 고민하다 이내 포기했다. 애초 계획대로 오늘은 옹기만들기 체험을 하고 송소고택과 한지체험은 다음 기회로 미뤘다. 경상북도 무형문화재인 이무남(67) 옹기장은 계시지않는다. 대신 청송옹기 전수조교인 그의 아들 호명(39) 씨가 둘을 맞았다. 여기서도 둘은 운이 좋다. 여름방학 이전까지는 초등학생 체험으로 시간이 나질 않는데 마침 여유가 있었던 것. 굵은 가래떡처럼 뽑은 흙을 들고 본격적인 체험에 들어갔다. "언니, 손톱 밑에 흙이 끼더라도 제대로 만들어 봐." 미리 재떨이를 만들거라 작정하고 온 미숙 씨가 보챈다. "보기와 달리 어렵지만 내 작품을 만들고 나니 흐뭇합니다." 영희 씨는 고민하다 입구가 넓은 사발을 만든다. "어릴 때 이후 흙을 만져보긴 처음입니다.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네요."

16:05 "아직 볼 것도 많은데…." "딱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대구까지 돌아가는 시간을 감안해 여행을 마무리 할 때다. 두 여자는 아쉬움이 많다. 오늘 돌아본 것도 청송의 일부일 뿐. 아직 주왕산 산행에다 꽃돌단지, 야송미술관 등 가볼 곳도 많다. 서른이 넘은 두 여자. 그래도 소원은 풀었다. 주산지와 절골의 풍경을 가슴 가득 담아간다.

글.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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