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구양숙 作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누구도 아닌 당신에게

구양숙

산에

찔레가 하얗게 피는 초여름입니다

당신이 걸어가고 있을 거리에는

담장마다 장미가 피어나겠지요

바람만 찾아오는 산기슭에서

저 혼자 피었다 지는 들꽃처럼

기다리다가 저무는 오늘도

내 안에는

홑겹 찔레꽃이 가득 피었더랬습니다

장미처럼 한 번 환하게 드러나지도 못하고

몰래 사무친 이 향기를

내 당신에게 보내기는 하지만

세상의 길은 너무도 많고 넓어서

끝내 닿지 못하고 말 것을 아는지라

혼자 썼다 지우는 편지는

언제나 눈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산바람만 알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당신'이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믿음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정서적으로는 가까이 있으면서도 함께 있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언제나 애타게 갈구하는 대상입니다. 또한 '당신'은 비밀스러운 존재입니다. '나' 또한 '당신' 앞에 '장미처럼 한 번 환하게 드러나지도 못하'고 '몰래 사무친 이 향기'만을 보낼 뿐입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마음은 '혼자 썼다 지우는 편지'이기에 '언제나 눈물입니다'.

그러나 '끝내 닿지 못'할 '당신'을 가졌기에 우리는 꿈 꿀 수 있는 것입니다.

구석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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