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군대

성년 남자들에게는 군대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저마다 힘들고 고생한 경험에 열을 올린다. 누가 더 모진 '빳다'와 기합을 받았는가 내기라도 하듯 고통의 나날들을 부풀려 말하곤 한다.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를 무사히 헤쳐 나왔다는 뿌듯함이 고난의 시절조차 즐거운 추억으로 남게 한다. 죽을 맛이었기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한다.

○…4년 전 월드컵 때 한국과 터키의 4강전이 열리던 날 서해상에서 남북 해군이 맞붙었다.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군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전투에서 우리는 6명을 잃었다. 전사 군인들은 목숨이 끊어지던 순간까지 총구를 놓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전투가 끝난 후 선제공격을 하지 말라는 군 수뇌부의 지시가 있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남편을 잃은 어느 미망인은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영령에 대한 국가의 소홀함을 원망하며 이민을 가기도 했다.

○…어제 육군 모 부대에서 치러진 GP 총기 사건 1주기 추도행사장은 유족들의 오열로 뒤덮였다. 아들의 사진을 붙잡고 "같이 집에 가자"며 우는 어머니나 "왜 아들을 낳았는지 모르겠다"는 어머니에게 군대는 원망스런 곳일 수 있다. 군에 가지 않았다면 날벼락 같은 사건으로 아들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아들과 남편을 잃었지만 그들 역시 군대가 없어져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을 터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남한은 화염에 휩싸일 것' '핵전쟁의 최초 피해자는 남한'이라는 북한 당국자의 발언은 평화 보장 수단으로서의 군의 존재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이 와중에 경기도 한 고교에서는 수업시간 중 "국기에 대한 경례는 민족에 대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 "같은 민족과 총을 갖고 싸우는 군대는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라고 말한 교사의 징계를 요구하는 학부모의 진정서가 제출됐다.

○…6월은 호국 보훈의 달이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영령들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는 달이다. 그러나 월드컵이 6월을 '축제의 달'로 바꾸고 있다. '대-한민국' 함성을 지르며 국민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면 그런 달로 바뀐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군은 평화를 위한 최후의 보루임은 잊지 말아야 한다. 희생과 대가를 치르지 않는 평화는 기대할 수 없기에 우리의 젊고 싱싱한 꽃들이 기꺼이 제복을 입는 것이다.

서영관 논설위원 se0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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