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응원문화를 국민통합과 축제로

응원문화 새로운 한류코드로 부상

2006독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이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월드컵이 우리 사회와 문화계에 미친 직간접적인 영향은 크다.

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에서 처음 선보인 붉은 악마들의 거리응원은 이번 월드컵에서도 남녀노소와 지역, 빈부를 막론하고 마음을 터놓고 어울리는 국민통합과 축제의 장으로 등장했다. 문화예술계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의 학습효과를 십분 되살려 월드컵 코드에 맞춘 공연·전시·출판물들을 쏟아내 중요한 문화마케팅의 소재로 활용했다.

반면 월드컵을 이윤 획득의 도구로만 해석한 노골적인 상혼과 이에 따른 응원문화의 자발성 퇴색, 월드컵 이외 모든 국내외적인 이슈는 부차적으로 취급될 정도로 과잉이었던 언론 보도, 월드컵 응원에 따른 생업 지장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응원 문화·새로운 한류 = 2002년 월드컵의 응원이 주로 네티즌을 중심으로 젊은이들의 자생적인 문화였다면 이번 월드컵 응원은 한마디로 준비된 응원이었다.

2002년 월드컵에서 이미 우리 국민은 냉전시대의 분위기나 레드컴플렉스에서 벗어나 개인의 표현욕구를 마음껏 발산하면서도 집단적인 응집력을 발휘, 새로운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거리 응원에서 발견했다.

응원을 지원하기 위해 지하철이 연장운행하고 교회에서 새벽 3시에 예배를 보거나 각종 연극과 전시 등이 공연시간을 맞추거나 개관시간을 연장하는 등 월드컵 응원에 모든 사회적인 시간표를 맞추는 현상은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된 인상이다.

한국의 독특한 응원문화는 해외에도 전달돼 한국을 알리는 새로운 한류 코드가 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서울발 기사에서 "새벽 4시에 벌어지는 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온 가족이 페이스 페인팅을 하고 반짝이는 헤드밴드의 '붉은 악마' 복장에 각종 응원도구를 든채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 한국"이라고 소개했다.

스위스 일간 '타케스 안차이거'는 한국과 프랑스의 경기 때 독일 라이프치히를 찾은 한국 응원단을 소개하며 '축구응원 월드컵이 열린다면 한국이 강력한 우승후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2002년과는 달리 일찌감치 기업들이 개입해 각종 이벤트와 함께 진행된 응원전의 현장이나, 산더미같은 쓰레기를 남긴 시청 앞 광장의 모습은 자발성이 떨어지고 순수성이 퇴색한 응원 문화가 남긴 씁쓸한 뒷모습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응원전에서 여성의 참여는 2002년에 비해 한층 활발해진 모습이었다. 억눌렸던 욕구를 발산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여성들이 월드컵을 계기로 욕구를 표출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최근 펴낸 '이어령 문화코드'에서 "원래 한국의 문화코드에는 광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고 광장대신 골목이 존재했으나 월드컵의 거리 응원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낯선 사람과 함께 춤을 추고 기쁨을 나누는 이벤트에 약한 한국인들은 이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데 어울려 춤추고 노래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울러 붉은악마가 내지르는 "'대~한민국' 함성소리는 나라 이름을 자랑스럽고 친근한 것으로 바꿔놓았다"고 평가했다.

◇월드컵 활용 문화예술 행사 봇물 = 2002년 월드컵으로 된서리를 맞았던 문화예술계는 이번에는 월드컵과 공존공생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공연계는 월드컵 기간에 '맘마미아', '지킬 앤 하이드', '브루클린', '미스사이공' 등 대형 뮤지컬 개막을 강행해 월드컵과 맞불놓기를 시도했다. 대신 월드컵 응원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거나 월드컵 응원 복장을 하고온 관객들에게 입장료를 할인해주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전시장도 월드컵 관련 행사로 분주했다. 인사동의 한 갤러리는 대표팀의 월드컵 16강을 기원하며 유명화가와 조각가, 금속공예가 16명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회를 개최했고, 분당 성남아트센터는 스포츠 스타들을 그린 회화와 영상작품을 전시했다.

또 응원전 장소와 가까운 광화문의 한 화랑은 대표팀의 16강을 기원하는 월드컵 민화와 무속도 등과 디자인 작품, 부적 등을 내걸기도 했다.

출판계도 월드컵을 겨냥해 축구관련 서적을 집중적으로 내놓아 역설적으로 특수를 노렸다. 히딩크 감독 관련 책들이 쏟아졌던 2002년의 재판으로 올해는 아드보카드 감독을 조직 관리자나 리더십의 모델로 해석한 경제경영관련 서적들이 집중적으로 출간됐다.

축구에 관한 단상이나 축구의 역사를 소개하고 축구 규칙을 설명한 에세이물, 어린이들에게도 축구 열기를 전파하는 축구만화책 등도 이어졌다.

패션·의류업계에서도 붉은 악마복장이나 태극기 등을 동원한 '월드컵 거리패션', '월드컵 액세서리 착용법' 등 새로운 패션 문화를 제안하기도 했다.

◇부작용 = 거액을 쏟아부어 월드컵 국내 중계권을 확보한 방송 3사는 월드컵 기간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월드컵 관련으로 편성,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았다.

조별리그 한국전을 중계하면서 한국-토고전의 시청률 합계가 73%에 달하고 막대한 광고수익을 올렸지만 정규 뉴스시간은 물론 일반 오락 프로그램까지 모두 월드컵 관련 아이템으로 도배한 편성은 시민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이같은 월드컵 과잉보도는 월드컵이 아닌 대부분의 국내외적인 뉴스를 퇴색시켜 북한 미사일 문제나 학교급식 사고, 한미 자유무역협정, 평택 대추리 사태 등 중요한 이슈가 묻히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온국민의 월드컵 응원열기는 이튿날 생업에 지장을 초래했으며 응원 현장의 혼란을 틈타 발생한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와 교통체증 등은 인터넷상에서 '안티 월드컵' 카페를 양산했다. 한국-토고전을 제외하면 한국-프랑스, 한국-스위스전은 모두 우리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열려 일부 기업은 아예 출근시간을 늦추기도 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월드컵을 겨냥해 졸속으로 기획된 이벤트나 수준낮은 행사에 따른 '월드컵 피로감'도 심각했으며, 의미있는 공연이나 전시가 월드컵 열기에 밀려 외면당하기도 했다.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최근 제주에서 열린 출판경영자세미나에서 "월드컵에 대한 열광은 이상하고도 위험한 상황이다. 이는 파시즘과 비슷한 것으로도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꼬집기도 했다.

월드컵 응원전에 나선 여성들의 모습이 신문, 방송이나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해 지나치게 부각되고 대개는 선정적인 사진 등으로 관심을 모으는가 하면 '엘프녀' 등 깜짝 스타가 등장한 것은 월드컵 응원 문화의 참신함과 건강성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남겼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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