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와 일상성에 영합하지 않고 시종일관 서사와 담론이란 문학의 본질에 천착해 온 작가 엄창석(46). 중후한 주제들과 끈질긴 정면승부를 벌여온 작가가 6년 만에 새 작품집 '비늘 천장'(실천문학사)을 내놓았다.
'몸의 예술가', '고양이가 들어 있는 거울', '비늘 천장', '해시계', '쉰네 가지의 얼굴', '호랑이 무늬', '오래된 전쟁' 등 7편의 단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을 관류하는 주제 또한 존재에 대한 깊고 넓은 성찰이다. 각각의 단편들이 마치 하나의 장편을 읽는 것 같은 여운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작가는 존재와 신, 운명과 우연, 의식과 무의식, 예술과 예술가 등 결코 만만치 않은 주제를 끝까지 밀고 나가며 인간 존재의 의미를 들여다본다. 그러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솜씨며 밀도 높은 작품의 결은 새삼 작가 엄창석의 역량을 재확인해준다.
표제작인 '비늘 천장'은 이땅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온 19세기 말, '셩셔'를 한글로 판각해 전파하려는 '내'가 각자공(刻字工) 복인춘을 만나 겪는 이야기이다. '몸의 예술가'는 체코의 '단식 광대'를 통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치열한 의지를 묘사한 작품이며, '고양이가 들어 있는 거울'은 수사관이면서 동시에 범죄자이기도 한 주인공이 미제사건에 봉착하는 모순을 통해 존재의 문제를 특화시킨 작품이다. '해시계'는 조선시대 이야기꾼 채물음을 등장시켜 인간의 근원을 탐색하며, '쉰네 가지의 얼굴'은 도피 중인 탈옥수가 주인공이다. '호랑이 무늬'와 '오래된 전쟁' 역시 일상과 삶 속에 묻힌 의미를 꺼내어 현대인의 존재양식을 되새기게 한다.
엄창석은 늘 그랬다.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인 '화살과 구도'는 노동현장의 얘기를 담았고, 중편 '슬픈열대'(1992년)도 80년대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그후 8년만에 나온 소설집 '황금색 발톱' 또한 자본주의의 숨은 모순을 폭로한 노작이다. 작가의 세상과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소설가 이문열도 "존재를 특화하는 정체성에 대한 엄창석의 성실하고 진지한 성찰에 동참하는 것도 소설읽기의 한 즐거움"이라며 "이번 작품집 또한 입체적 구성으로 독특한 울림을 직조해낸 수작들"이라고 평가했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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