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남아 국제결혼] ③베트남 처녀들의 코리안 드림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못 갔어요. 공부하고 싶어요."(레튀황·22·여) 씨.

"시집 가면 언제 또 올지 모르겠어요. 병상에 누워있는 할머니와 부모님, 동생들이 걱정입니다." (누엔 녹로안·23·여) 씨.

맞선장에서 본 베트남 여성들은 당당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행복보다 가족들을 더 걱정하는 현대판 '효녀 심청'이었다. 오히려 한국 노총각들이 부끄럼과 수줍음으로 고개를 떨구기 일쑤였다.

유교적 가치를 근거로 한 그들의 삶은 너무도 한국인과 닮아 있었다. 4대 조상의 제사를 지내며 남편을 섬기고 어른을 공격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깊고 자녀에 대한 애착심도 많아 교육열이 강했다. 또 대부분 농삿일에 종사하고 있지만 어려움과 힘든 역경이 닥치면 잘 참고 견디는 억순이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어 60~70년대 한국의 어머니상을 닮은 듯 했다.

이들은 호치민시로부터 7~9시간 떨어진 궁벽한 농촌의 처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는 가정에서 태어나 넉넉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여성들이다. 국제결혼도 가난을 탈출하기 위한 일.

레튀황씨는 "이웃에 사는 친구가 3년 전 한국 남성과 결혼했는데 덕분에 시멘트집을 새로 지었다. 한국에 가서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며 코리안 드림을 펴보였다.

레튀황씨는 최근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한 뒤 첫 맞선장에서 한국 노총각 배일권(전북 전주) 씨를 짝으로 맞았다. 딸의 결혼 소식에 밤잠을 안자고 수시간씩 차를 타고 달려온 가족들은 결혼식장에서 백년손님을 박수와 환대로 맞았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쩐느뜨엉장씨와 이왕형(34·대구)씨는 곧바로 처가집 방문길에 올랐다. 그렇지만 가는 길은 순탄치만은 않다. 강을 만나면 소형버스를 배에 싣고, 길이 없으면 오토바이나 쪽배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창밖엔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풍경이 펼쳐졌고 긴 여정에 지친 신랑과 신부는 의자에 쪼그린 채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7시간여만에 처가집이 있는 만장성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이 곳에서 처가집이 있는 곳 까지는 오토바이로 30여분간 더 들어가야 한다.

폭우가 쏟아져 온통 아수라장이다. 어렵싸리 도착한 처가집은 시골장터 한 구석에 볼품없이 자리잡고 있었다.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는 바람에 먹고 사는 문제는 큰 걱정이 없었다"는 쩐느뜨엉장씨는 남편과 나란히 식당 한 가운데 마련된 제단에 향을 피웠다.

"이국땅 가서 사는 게 낯설지만 남편과 아들, 딸 낳고 행복하게 살게해 주세요. 좋은 남편 만나게 해줘 고맙습니다."

남편 이씨도 예를 갖췄다. 결혼식장에서 만났던 처가집 식구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곱게 키운 딸을 줘서 고맙습니다. 고생 안시키고 열심히 살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남편 이씨를 따라 나서는 새색시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이제 가면 언제 또 올지···" 여동생의 머리를 쓰다듬던 신부의 눈가엔 눈물이 가득했다.

노총각 이정호(47·영주) 씨도 누엔 녹로안(23) 씨와 결혼했다. 처가집은 호치민에서 4시간. 배로 강을 두번 건넌 뒤 차량으로 3시간, 다시 쪽배로 40여분을 가야했다. 강나루에 마중 나온 가족들은 새신랑과 신부를 반갑게 맞았다. 외할머니 우웬테이니(87) 씨는 "새해가 되면 한번씩 꼭 오게. 외손녀 만져보고 싶으니까.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라며 외손주 사위의 손을 꼭 잡았다.

이씨는 "고생 안 시키고 잘 살겠다. 신정때는 농사가 없어 조용하다. 꼭 오겠다"고 약속했다.

쪽배에 몸을 싣고 호치민으로 돌아오는 신랑·신부들의 입가엔 웃음꽃이 가득했고 가난으로부터의 탈출을 꿈꿨던 베트남 여성들은 어느새 한국 신랑과 사랑을 싹틔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한국을 배우려는 베트남 신부들의 노력은 눈물겨워 보였다. 6박7일 동안 신부들의 손엔 언제나 한국어 회화 책이 들려 있었다.

누엔 녹로안씨는 호텔 방에서 자신이 갖고 있던 회화책을 꺼내 뒤적이며 삐뚤삐뚤한 한글로 얼굴도 못본 시부모에게 보낼 편지를 쓰고 있었다. "부모님 안녕하세요. 한국에 가면 잘 모실께요. 건강하세요···."

이들은 남편을 한국으로 보낸 후 한국행 서류가 준비되는 2~3개월 동안 결혼중개회사가 마련한 숙소에서 한국어 공부와 요리수업, 한국 문화에 대해 공부하게 된다. 꿈을 이룬 신부들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남편에게 "부모님께 안부 전해 주세요. 건강하세요. 오직 당신을 생각하겠어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호찌민시에서 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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