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혼여성 양육비 고통 이제 해결 되나

지역 이혼여성들이 생계비 부담에다 자녀 양육비마저 책임지느라 겹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갈수록 이혼율이 증가하는 추세 속에 양육권을 가져도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스스로 마련할 수밖에 없기 때문.

◆양육비 안 주는 전 남편

지난 2003년 협의 이혼한 뒤 상습적으로 자녀들에게 폭력을 휘두른 전 남편을 상대로 법원에 양육권 반환 및 양육비 신청소송을 낸 A씨. 홀로 삶을 꾸려야 하는데다 긴 법정소송에 지쳐 결국 양육비를 포기하고 말았다. 양육권을 돌려 받는 데만 1년 넘게 걸렸다. '돈이 없다.'고 버티는 전 남편은 석달째 양육비 이행명령을 지키지 않고 있다. A씨는 "아이만이라도 데리고 온 것에 만족한다."며 "기약없는 소송에 더 이상 가슴앓이 하기가 싫다."고 눈물지었다.

역시 지난 2001년 협의 이혼한 B씨. 이혼 당시 전 남편은 월 7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약속했지만 첫 다섯 달 이후로는 돈을 보내지 않고 있다. 그러나 B씨 역시 지난 5년간 미지급 양육비를 포기했다. 양육비 소송비를 감당하기 힘들고, 무엇보다 긴 법정공방 기간을 견뎌낼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생활비마저 홀로 해결해야 하기에 더 이상 법정공방으로 돈을 쓸 여유가 없는 형편이다.

이처럼 대구지역 이혼 여성들이 자녀양육에 따른 겹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해 조사한 대구지역 이혼율은 45%. 해마다 이혼 건수가 5천~6천 건에 이르고 있다. 평균 이혼연령 40세. 이혼 당시 평균 자녀수 1.3명이었다. 평균 초혼 연령이 29.8세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대구 이혼부부들은 열 살 남짓한 자녀를 데리고 있는 셈. 이들 이혼한 대구여성들이 혼자 자녀를 키우기란 그야말로 가시밭길의 연속이다. 어렵게 양육권을 확보해도 양육비 받기가 힘들기 때문.

따라서 일부 이혼 여성들은 생계비와 자녀 교육비 등을 마련하느라 기초생활수급 대상자 지정을 신청, 정부지원에 의지하거나 파트타임 일자리 구하기에 나서는 등 홀로 자녀를 키우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육비 왜 못 받나

한국 가정법률 상담소 대구지부에 따르면 대부분의 대구 이혼 여성들이 이 같은 양육비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여성폭력통합 상담소 김영자(44) 소장은 "양육비를 받아내는 법적 구속력이 너무 약하기 때문"이라며 "이혼 여성들과 자녀들이 빈곤의 악순환에 고통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행법 상 전체 이혼의 84%를 차지하는 협의 이혼 땐 양육비와 양육권을 강제하는 규정이 없다. 이혼 후 양육비 문제가 불거지면 소송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는 것. 하지만 이혼관련 전체 소송 중 양육비 청구소송은 고작 3% 수준에 불과하다.

이혼여성들 대부분이 과도한 소송비용과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씩 걸리는 소송기간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이 같은 제도적 허점 때문에 이혼여성 중 전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78%에 이르고 있다는 것.

비록 소송에서 이겨도 남편이 이행명령을 지키지 않을 경우 양육비를 받을 길이 없다. 법원은 과태료나 감치명령 등 징계처분만 내리기 때문. 당장 양육비를 원하는 이혼여성들은 "너무나 동떨어진 법과 현실에 두 번 울어야 한다."고 한탄하고 있다.

대구여성의전화 이두옥 대표는 "자녀양육을 위한 제도적·사회적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바뀌나

이처럼 이혼여성들의 양육비 부담이 적잖은 고통을 주는 문제로 부각되자 정부가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지 않는 느슨한 현행 법규정을 이젠 바꿔보겠다며 개정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법무부는 자녀 양육대책이 없으면 협의 이혼을 하지 못하게 하는 민법·가사소송법 개정안을 내놓은 것. 개정안은 이혼시 부부 간 양육합의를 의무화했고, 소송 없이 양육비를 지급할 수 있는 강제명령과 양육비 미지급시 재산조회 규정도 명문화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3일 여성가족부 역시 저소득층 여성의 양육비 청구소송 비용을 보조하겠다는 내용의 대책을 발표했다. 이혼 후 여성의 빈곤층 전락 비율이 남성에 비해 3배에 이르는 현실 때문이라는 것.

이에 대해 박선아(32) 변호사는 "이혼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면서 양육자 책임은 미진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이번 법 개정을 환영했다. 또 한국 가정법률 상담소 대구지부 유연희(52) 소장은 "예전에도 양육비를 안 주면 제재를 가하는 방법은 있었다."며 "개정법이 얼마나 잘 집행되는지 앞으로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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