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마술

세기의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 그의 '일루전(illusion) 마술쇼'는 스케일 면에서나 귀신 찜 쪄 먹을 테크닉면에서나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십'수백만의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도, 만리장성도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그랜드 캐넌의 그 엄청난 대협곡도 공중에 둥둥 떠서 통과한다. 그의 공간이동 마술은 언제나 사람들의 넋을 쏙 빼놓고야 만다.

○…한 번은 카퍼필드가 4인조 강도를 만났다. 보조 마술사는 주머니 속의 것을 다 털렸다. 카퍼필드도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빼보였다. 빈 주머니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머니 속에 지갑과 휴대전화가 들어 있었다. '주머니 속 물건 없애기' 마술이었다.

○…신세대 마술사 이은결. 올해 스물다섯, 187cm의 훤칠한 키에 번개에 맞은 듯한 도깨비 머리의 이 청년 마술사가 '큰일'을 냈다.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서 폐막된 세계마술사연맹 주최 '세계 챔피언십 2006' 제너럴 매직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마술 월드컵'으로 불리는 세계 최고 권위 대회의 7개 분야 중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문에서 넘버 원 마술사로 등극했다.

○…마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지 10년, 2003 세계마술사연맹 종합 2위 등 무서운 성장세와 함께 웬만한 인기 연예인 부럽잖은 대형 스타가 됐다. 절절한 멜로드라마, 유난히 긴 손가락들로 펼치는 환상적인 무대는 관객들의 눈과 마음을 순식간에 사로잡아 버린다. 무대에서 시종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이은결, 하지만 중3 때 마술에 첫 입문한 이유는 의외로 '내성적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였다 한다.

○…이은결의 등장 이후 마술에 대한 편견도 많이 사라졌다. 우리에게 즐거운 환상을 안겨주는, 일상의 윤활유로 받아들여지면서 '마술 신드롬'까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마술 동호인 인구는 약 100만 명. 직접 마술 강좌를 통해 마술을 배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내성적인 성격을 고치려고,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소통하기 위해, 여자 친구에게 멋지게 청혼하고 싶어서, 자녀들과 대화하고 싶어서 등 갖가지 이유에서다. 카퍼필드는 "만약 꿈꿀 수 있다면 그것은 현실이다"라고 했다. 일상이 답답하고 지루할 때 마술 한 자락 펼칠 수 있다면 참 멋질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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