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이나 다를 게 없다. 월드컵이 열린 해, 온 나라가 붉은 물결에 휩싸이고, 어른아이 할 것 없이 TV 앞에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허무에 빠지고, 한국 축구 K리그의 관중석은 텅 비어 있고…. 2003학년도 입시에서처럼 2007학년도 입시에서 월드컵과 관련된 문제들이 적잖이 출제되리란 예측도 다를 게 없다.
학생들 입장에선 개최국으로 4강에 올랐던 2002년과 참가국으로 16강에도 오르지 못한 2006년의 차이를 알 필요가 있다. 당장 입시가 닥친 수험생이 아니라도 축구와 월드컵의 속성, 우리 응원문화의 장·단점, 그 속에서 버리고 취해야 할 것들에 대한 입장 정도는 다져 두는 것이 좋다. 그만큼 월드컵과 응원문화는 우리 국민에게 거대한 담론이 됐다.
▶축구와 월드컵의 마력
축구는 여러 스포츠 가운데 가장 많은 국가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몰고 다니는 종목으로 꼽힌다. 그 가운데서도 월드컵은 올림픽이나 각 대륙 내 대회, 국가별 리그 등을 망라해도 단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다.
배경에 대한 분석은 여러 가지가 있다. '경기 모습은 동물을 잡기 위해 들판을 내달렸던 야생수렵시대의 우리 선조들을 떠오르게 한다. 축구는 야생동물을 은유하는 축구공을 향해 줄기차게 돌진하며 이를 이용해 골문에 차 넣는다. 생명을 걸지 않고도 사냥이라는 행위와 충분히 유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으며, 사냥에 성공하면 우승컵과 명성과 환호, 즉 문명화된 고깃덩어리를 손에 넣는다.'(인터넷 칼럼)
월드컵에 대해서는 '축구의 본질인 원시적 엑스터시와 카타르시스를 바로 월드컵이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건과 열광이 교차하며 사람을 가장 미치게 하는 스포츠라거나, 축구를 통해 자신들의 잠재력이 적지 않고, 우수한 국가의 우수한 국민임을 과시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치권력, 대기업과 매스컴의 이해관계가 교묘히 일치한 3각 결탁으로 월드컵 광풍이 의도적으로 연출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개인적으로 축구를 좋아하든 않든 이 같은 다양한 분석들은 한 번쯤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응원문화 바람직한가
2002년에 이어 다시 뜨거운 월드컵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전국은 한목소리를 내며 광장은 가득 찼다. 사람들은 모처럼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일체감을 즐겼다. 그러나 16강 탈락이 확정되자 앞장서서 불을 지피던 언론부터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모두가 금세 싸늘해졌고, 아무리 'CU@K리그'를 외쳐도 K리그에 대해서는 냉랭했다. 겨우 1천 명을 넘는 관중에 선수와 관계자들은 가슴을 치고 있다.
2002년 이후 붉은악마와 함께 새롭게 나타난 응원문화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국민적 자긍심을 보여준, 세계가 부러워하는 열광이었다는 측이 있는가 하면, 광기에 가까운 전체주의의 모습이라는 질타도 있다. 젊은 세대들이 세계를 상대로 보인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칭찬하는가 하면, 곧이어 닥칠 게 분명한 허무를 직감한 심리적 공황상태라고 분석하는 이도 있다. 찬반을 떠나 대기업이나 언론 매체에 의해 다분히 기획된 축제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칼럼이나 사설에 나타난 '잃어버린 광장에 대한 그리움이자 자신의 본령을 되찾으려는 열망', '억압된 서열구조를 타파하고 위와 아래가 같이 소통할 수 있는 어울림의 해방공간에 대한 갈구', '10대와 20대 여성이 길거리 응원의 주축이었다는 점은 기존 지배질서에 대한 간접적 저항' 등은 온건한 분석이다.
'하루 방송 시간의 70%를 축구 중계에 바친 일은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것', '국호를 응원 구호로 삼고, 애국가를 응원가로 삼은 유일한 나라인 한국 사람들은 국가주의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치유하고 싶었던 것', '우리의 체질이 된 속도지상주의와 성취주의에 맞아떨어진 것' 등으로 짚은 주장도 보인다.
정치 상황과 연계시켜 '한국의 정치가들은 스포츠를 매개로 하여 권력놀이를 하려는 유혹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거나 '축구에 매료된 대중 심리를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민중의 심리를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정치현상이 이제 한국에 상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K리그의 위기와 축구 팬
국내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는 월드컵의 열기와 무관해 보인다. 월드컵 직후 시작된 K리그 경기장의 관중석은 텅 비어 있다. 2002년에는 일시적이나마 함성이 이어졌지만 2006년에는 순식간에 관중과 공중파 TV 중계가 사라졌다.
K리그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최근에 발표된 축구 관계자 대상 설문조사 결과가 어느 정도 제시하고 있다. 응답자의 98.9%가 K리그 운영이 잘못 되고 있다고 답했으며 원인으로 연맹의 무능한 행정력, 각 구단의 소극적 운영, 선수들의 수준 낮은 경기, 대표팀 차출로 인한 공백, 엘리트 체육 극복 등이 꼽혔다.
이 밖에 많은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K리그와 실업축구 N리그 간 승강제 도입 및 이를 둘러싼 이견 조정, 일본 J리그처럼 기업 홍보보다 지역사회와의 일체화 우선, 문화상품으로서의 경쟁력 회복 등 전문적이고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 입장에선 이런 내용들을 속속들이 알 필요가 없지만, 월드컵과 비교해서 어떤 불리한 요소들을 안고 있는지 정도는 알아 두어야 한다.
아울러 팬들에 대한 비판은 다소 못마땅해 보이거나, 늘상 되풀이되는 구호로 보여도 경청할 필요가 있다. '축구를 둘러싼 몰이성적 애착과 지나친 집단성은 결과적으로 축구 발전을 가로막게 된다. 축구를 축구로 즐기지 못하고, 민족적 한(恨)과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개입시키면 축구는 이미 스포츠가 아니다.'(신문 사설)
'국내 축구는 수준이 떨어져 재미없다고 냉소만 할 게 아니라 함께 키워주는 성의도 보여야 한다. 우리 축구로 인해 그만한 기쁨을 누렸으면 응당 그 일부라도 돌려주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신문 사설)
한 축구전문가는 칼럼에서 '축구는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세계화된 언어다. 학생들에게 영어 이상으로 축구도 직접 시켜야 한다.'며 '축제는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재창조)이 되어야 한다. 축구만 하는 사람과 응원만 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진 양극화된 문화는 오래 가지 못한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이 직접 축구를 경험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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