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도심의 어느 학교 앞을 지나다 담장 너머 키 큰 해바라기가 눈에 들어온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차량들, 행인들의 종종 걸음질을 고개 쑥 내밀고 구경하는 듯한 모습이다 .
키다리 해바라기! 지난 날엔 어디서고 쉬 볼 수 있었던 꽃이다. 왼종일 벙글거리는 얼굴로 담장가에 문지기처럼 서있던 꽃. 강아지나 거위처럼 제 식구 알아보고 반겨주는 듯 하던 꽃이었다. 그런 해바라기를 언제부터인가 보기 어려워졌다. 난장이처럼 작아진 미니 해바라기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전남 함평에 해바라기 마을이 생겼다한다. 농사로는 살기 힘들어진 농민들이 관광수입을 기대하며 해바라기를 심은 것이다. 3만여 평 해바라기밭이 아주 장관인 모양이다. 강원도 태백 구와우 마을의 구릉지 3만 평에도 해바라기가 물결을 이루고 있다 한다.
가을빛 살짝 묻은 바람결에 넘실거리는 해바라기밭! 젊은 날의 소피아 로렌과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가 열연했던 영화 '해바라기(Sunflower)'의 장면들이 상상 속에 겹쳐진다. 전쟁으로 생사를 알 수 없는 남편을 찾아 멀고 먼 소련으로 간 지오반나. 막막한 심정의 그녀 앞에 끝없이 펼쳐진 우크라이나 평원의 해바라기밭, 그립던 남편이 딴 여자의 남편이 되어 나타나자 서러움이 북받쳐 기차에 뛰어올라 오열을 터뜨리던 그녀.
우리말의 '해바라기'는 중국인들이 이 꽃을 가리킬 때의 '향일규(向日葵)' 에서 '해를 향하다(向日)'라는 의미를 따서 붙인 이름이라 한다. 해를 향한 해바라기의 모습에서 비롯된'규심(葵心)'은 그래서 '님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일편단심'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해바라기의 이미지는 이중적이다. 어디서나 잘 자라는 무던함, 뜨거운 뙤약볕도 말없이 견뎌내는 인내심, 낮은 담장과도 잘 어울리는 소박함, 한 여름내 꽃을 피우다 가을엔 잘 익은 씨앗을 남겨주고. 그 줄기는 藥材(약재)로, 찌꺼기는 사료로 제 온 몸을 다 내주는 無慾(무욕)이 돋보인다. 그런 반면'해를 따라 도는 꽃'의 이미지로 인해 '권력을 따라 다니는 자', '기회주의자'등으로 낙인찍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꽃이 무슨 잘못이랴. 출세를 위해 양지만 찾는 사람이 그릇될 뿐.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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