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치 수용소 근무 83세 할머니 미국서 추방돼

나치 치하의 친위대원으로 유대인 수용소에서 근무했던 한 독일 여성이 이런 사실들을 감쪽같이 숨긴채 유대인과 결혼한뒤 미국으로 이주해 살던중 과거가 드러나 강제추방당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미 법무부는 19일 샌프란시스코에 살던 엘프리데 리나 링켈(83) 할머니에 대해 이달말까지 미국을 떠날 것을 명령했으나 이미 지난 1일 미국을 떠나 독일로 돌아갔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뇨병으로 한쪽 눈을 실명하고 관절염으로 지팡이에 의존해야 했지만 늘 상냥한 미소를 지었던 링켈 할머니가 내일을 기약하기 힘든 황혼기에 국외로 추방된 것은 나치 치하에서의 전력 때문이었다.

1922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아돌프 히틀러 친위대 소속으로 라벤스브룩 집단 수용소에 배치됐다.

당시 여자 포로들을 수용하고 있던 라벤스브룩에서 그는 공격용 개의 훈련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수용소에서 개의 공격을 받아 1만명 이상의 여성이 살해됐고 일부는 굶주리거나 병들어서, 또 일부는 가스실이나 화생방 무기 실험 대상으로 숨을 거둬야 하는 등 라벤스브룩은 잔인함으로 악명을 떨쳤다.

1년여가 흘러 종전이 되면서 수용소를 떠났던 링켈 할머니는 독일 출신 유대인 피난민인 프레드 윌리엄 링켈씨와 결혼했으며 자신의 전력은 남편이 숨질때까지도 비밀로 했다.

40세가 되기 직전인 1959년 미국행 비자를 신청했다가 라벤스브룩 수용소 근무 사실 때문에 거부당하자 이를 숨기고 재신청해 비자를 받아낸뒤 미국으로 들어온 링켈 할머니는 숨진 남편을 유대인 묘지에 묻고 그 옆에 자신의 묘지까지 마련해놓았으나 나치 전범을 추적하는 손길을 피하지는 못했다.

지난 1979년 설립된 특별조사사무소(OSI)는 약 7만명의 이민국 명단을 대조해가며 라벤스브룩 형무소 근무자 명단과 대조하는 작업을 계속해 왔고 마침내 '엘프리데 후스'라는 그의 처녀적 이름과 입국자 명단에 있는 '알프리데 리나 링켈'의 연관성을 찾아낸 것.

법무부 관리 2명이 샌프란시스코의 아파트를 방문했을때 링켈 할머니는 순순히 자백하면서 추방 명령에도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았다.

그는 이들 관리에게 "공장에서 일하기 싫어 더 많은 급여를 주는 수용소에서 개 훈련 근무를 지원했지만 개를 죄수 공격용으로 쓴 적은 없고 나치당 행사에 참석한 적도 없다"면서 "내 과거가 들통날 것을 우려해 시민권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의 변호사인 앨리슨 딕슨씨는 "할머니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보려는 노력의 하나로 유대인과 결혼하고 유대인 재단에 기부하는 등 과거 행적에 대해 속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어쨌건 링켈 할머니는 남편이 숨지는 날까지 자신의 과거를 숨긴채 단 한번도 밝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운명을 알았는지 6개월전부터 독일로 떠날 준비를 했다는 그는 변호사에게 외국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를 문의하기도 했으며 남편 옆에 예약했던 묘자리도 판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에 숨어들어와 살던중 적발된 100여명의 나치 박해자 가운데 유일하게 불잡혀 추방된 여성으로 기록될 링켈 할머니는 앞으로 독일에서 나치 치하 복무와 관련한 재판에 출석해야 하며 아마도 미국에 합법적으로 재입국하지 못한채 자신이 태어났던 곳에서 죽음을 맞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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