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단풍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어느 계집이 제 서답을 빨지도 않고/능선마다 스리슬쩍 펼쳐놓았느냐/용두질이 끝난 뒤에도 식지 않은, 벌겋게 달아오른 그것을/햇볕 아래 서서 꺼내 말리는 단풍나무들'. 시인 안도현은 불타는 가을산에서 저 혼자 관능으로 달아올랐다.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방하착(放下着)/제가 키워 온/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가장 황홀한 빛깔로/우리도 물이 드는 날' (도종환의 시 단풍 드는 날).

○…하늘이 까마득해지면서, 울렁거린다. 가을 멀미다. 서성대거나 떠나야 하거나 어찌할 수 없는 증세다. 삽상한 바람, 낭자한 핏빛 산색, 호젓한 산촌, 저물 녘 낯선 곳을 찾는 추정(秋情)이다. 반도가 붉게 물들면서 가을 행락 인파가 산을 덮고 바다를 이루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주일 전 금강산을 물들인 단풍은 설악산을 지나 오늘은 오대산 자락에 불을 댕겼다. 불길이 매일 50m씩 남하 중이다. 이런 속도이면 팔공산은 다음달 14일쯤 오색 물감을 뒤집어쓴다. 이 현란한 행차 소식에 벌써부터 벼르는 사람이 많다. 올 단풍은 예년보다 3일, 지난해보다 8일 정도 앞당겨졌다. 맑은 날이 많고 일교차 또한 커 빛깔은 더 환상적이라고 한다. 단풍은 기온이 떨어지면서 엽록소 파괴로 생기는 현상이다. 그러고 보면 서정주의 시는 빼어난 과학적 감성이 아닌가 싶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국내에서 소문난 단풍 트레킹 코스는 설악산 천불동계곡, 백담계곡이다. 오대산도 못지 않다. 다양한 활엽수가 연출하는 황홀지경이 발길을 묶는다. 전남 구례의 피아골도 단풍 명소다. 내장산이 내뿜는 색상은 여전히 강렬하다. 최근에는 잘 닦인 지방도로를 드라이브 삼아 사람이 꾀지 않는 산골 단풍을 찾는 이도 많아졌다.

○…해외여행 붐을 타고 캐나다의 웅장한 단풍도 인기다. 아직 우리에겐 있는 사람들의 관광 도락이겠지만, 나이아가라에서 퀘벡으로 이어지는 장장 800km의 메이플로드는 안 가 봐도 장대한 파노라마다. 아무리 그래도 쨍쨍한 하늘 아래서 소박하게 맛드는 우리 단풍이야 따를까. 그런 스케일에 매몰당해서야 깊어 가는 가을을 사무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공연한 시비인가.

김성규 논설위원 woosan@msnet.co.kr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의 대구시장 공천 과정에서 현역 중진 의원 컷오프와 공천 잡음이 이어지며 당내 반발이 커지고 있다. 리얼미터...
정부가 석유제품 가격 안정을 위해 최고가격제를 시행했음에도 일부 주유소에서 가격 인상이 발생한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는 주유소 가격 변동을 ...
한 네티즌이 현관문 앞에 택배 상자가 20개 쌓여 문을 열기 어려운 상황을 공유하며 택배 기사와 소비자 간 배려 문제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안전 확보를 위해 중국의 협조를 압박하며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의 연기 가능성까지 언급했다. ..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