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영천에서 전원생활학교의 강의가 있는 날이라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북영천 IC를 벗어나 국도를 달릴 때쯤 차창을 활짝 열고 선선한 가을공기를 깊숙이 삼키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선명한 코스모스가 도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히 쓸어 주었다.
주5일 근무제가 시작되면서 여가와 문화를 시골의 전원 속에서 즐기고자 하는 도시인들이 많아졌다.
경북농업기술원과 한국전원생활운동본부가 주관하는 전원생활학교의 수강생이 1천 명을 넘어섰다. 전국에서 모인 분들은 50대 후반의 평균 연령층으로 직장생활에서 퇴직했거나 건강상의 이유로 교육에 참여한 분들이 주류였다. 모두들 나름대로 전원생활의 꿈을 가지고 참석한 분들이라 강단에 서면 눈망울이 초롱초롱 했다.
강의 시작 전 필자는 먼저 어떤 전원주택을 꿈꾸고 계시냐는 질문을 던진다. 대부분 대답은 '집을 황토로 지을 것인가 아님 목조로 지을 것인가'라는 재료적인 측면으로 성급하게 접근을 한다. 그리곤 한결같이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싶다.'라고 한다.
난 여기서 이 분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허상)을 깨트리는 작업을 시작한다. 집은 어떤 재료로 만드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공간으로 채워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옷맵시와 말투, 행동양식에서 그 사람의 인품과 성격을 가늠한다면 집은 한 사람 뿐만 아니라 그 가족의 품위와 성품들을 담아낸다.
실 예로 하회마을의 충효당에 들러보면 유성룡 대감의 청렴하고 검소한 성품들이 공간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반면 같은 마을 북촌댁에 들어서면 '위엄과 권위를 갖추신 분이었구나'하고 짐작하게 한다. 이렇듯 집은 각자의 개성과 소신이 담겨 있는 고유한 공간을 담고, 이웃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함이 바람직하고 아름다운 집짓기의 기본적인 자세라 강조한다. 더불어 딱히 내부평수가 몇 평이고 방이 몇 개인 것보다 이웃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간, 예를 들어 툇마루 같은 내부와 외부의 전이공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인다.
아름다운 전원 속에서 '나홀로 성' 같은 뾰족한 지붕의 획일화된 형태의 집이 아닌, 주변의 경관 속에 안길 수 있는 건강한 집을 권해 준다. 그 속에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정이 전원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옥간정(玉澗亭)을 지나자 길은 한껏 몸을 비틀고 있다. 굽은 길을 조심스레 운전을 하다가 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도로변 가장자리에 돗자리를 깔고 음식을 들고 있는 가족들이 보였기에 속도를 늦추었다. 아마 벌초를 마치고 집에서 싸온 참을 먹는 중인 것 같다. 일 년 중 명절 때만이라도 먼 곳의 가족들이 모여 조상의 예를 마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근처에 이웃의 전원주택이 있다면 잠시 들러 쉬어 갈 수 있는 그런 문화를 상상해 보았다. 상상만이라도 기분이 좋다.
김경호 아삶공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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