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에 자리한 '경신사'는 장갑 하나로 지난해 수출 100만 달러를 기록한 업체다. 고작 직원이 37명에 불과하지만 일본,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20여 개국에 장갑을 수출하고 있다. 중국에 거의 잠식당한 장갑이지만 이들은 기술력이 요구되는 PU코팅장갑으로 생존의 길을 뚫고 있다.
◆공공의 적 'IMF'는 시련이자 기회였다
조두호(53) 사장은 1981년 경북 영천 시내에서 여느 장갑업체처럼 이른바 '요술 장갑'(늘었다 줄었다 신축성이 좋은 털장갑)을 생산하는 사업으로 경신사를 창립했다. 초반엔 직원 5, 6명, 연 매출 1억 원의 소규모 업체로 시작했지만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탄탄한 입지를 굳혀 가고 있었다.
1997년 우리나라 경제를 뒤흔든 IMF 위기가 닥쳤다. 하지만 IMF 위기 후 2, 3년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IMF 한파'를 잘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환율이 2배로 떨어지면서 수출을 주로 하던 이 업체에겐 호기로 다가왔다. IMF의 서슬 퍼런 여파는 3년 뒤에 찾아왔다. IMF 이후 장갑 생산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하면서 나온 장갑 제작기계들이 대거 중국으로 팔려나간 것. 이런 영향으로 2000년부터 중국에서 요술 장갑을 폭발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조 사장은 "국내산보다 중국산이 30~50% 저렴하게 시장에 나오니 경쟁 자체가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별다른 기술력이 필요 없던 요술 장갑이기에 가격 경쟁력의 저하는 곧바로 수출 급감으로 이어졌다. 조 사장은 "1년은 대략 버텼지만 그 이상은 어려웠다."고 술회했다. 결국 조 사장은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중국이 따라오지 못할 제품을 만들자
중국의 매서운 공격으로 한때 전국적으로 10곳이 넘던 요술 장갑업체는 이제 1, 2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주위 상황을 몸소 느끼던 조 사장은 요술 장갑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2000년 9월부터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발로 뛰었다. 가장 염두에 둔 것은 중국이 당분간 모방하거나 따라오지 못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 조 사장은 "어설픈 제품을 생산하다가는 가격에서 곧바로 중국에게 밀릴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조 사장이 어렵사리 찾은 것이 작업용으로 쓰이는 폴리우레탄(PU) 코팅장갑이었다. 이를 위해선 수십 억 원의 투자가 필요했다. 조 사장은 "당시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기술적인 면을 봤을 때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초반엔 기술력이 없어 장갑 내피만 생산할 목적으로 20대의 내피 짜는 기계를 도입했고 이어 2003년에 추가로 50대를 들여왔다. 또한 영천 시내에 자리하고 있던 공장도 2001년 시내 외곽으로 옮기면서 대대적인 신축을 했다. 코팅 기계도 2대 들여놓았다. 투자액만 20억 원. PU코팅장갑을 생산하는 업체의 도움도 많이 받았다.
코팅장갑은 2001년 코팅 기계를 들이면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량률이란 장애가 기다리고 있었다. 폴리우레탄 수지가 워낙 온도와 습도에 민감해 자칫 실수하면 코팅이 울퉁불퉁해지고 기포가 생기기 십상이었다. 특히 장마철에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조 사장은 "초창기엔 불량률이 무려 20~30%에 이르렀다."고 술회했다. PU코팅장갑은 선진국에서 많이 활용되던 장갑이라 품질이 완벽하지 않으면 수출은 요원했다.
◆기술 개발과 발로써 수출 100만 달러를 이루다
조 사장은 조연호 공장장과 함께 5평 규모의 실험실을 수시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코팅 기계를 축소해놓은 기자재에서 각종 테스트를 했다. 매일 평균 2, 3시간을 투자하며 만들고 실험하기를 수 없이 했다. 조 사장은 "국내에서 PU코팅장갑 역사가 7년 정도밖에 안 돼 기술을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2004년 드디어 조 사장의 얼굴에는 미소가 흘러나왔다. 온도와 습도 등의 외부 환경을 차단해 최적의 조건을 갖추는 설비로 바꾸어놓은 것. 이런 노력 덕분에 이제는 불량률이 2%도 되지 않는다.
해외 시장 개척도 조 사장의 발 끝에서 이루어졌다. 어차피 국내 수요가 미미하기 때문에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 2001년엔 국내 에이전트를 통한 간접 수출에 주력하던 조 사장은 서서히 직접 거래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를 돌고 미국 등지에 출장 가는 일을 밥 먹듯 했다. 조 사장은 "2002년엔 상당히 고전했지만 발로 뛴 결실이 2003년부터 조금씩 나타났다."고 했다. 이젠 일본이나 미국 바이어들이 수시로 경신사를 찾아온다. 그만큼 조 사장이 발로 뛰면서 품질과 인지도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지난해 10월엔 뒤셀도르프 산업안전전시회에 참가해 100만 달러 계약도 성사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조 사장은 여기서 안주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수지를 제공하는 화학 회사와 협력해 대체 수지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2008년 수출 500만 달러 달성을 계획하고 있는 조 사장은 "미래를 보고 계속 투자하고 준비하는 것만이 제조업계에서 살아남는 법"이라고 끝맺었다.
◇ 경신사 주력 'PU코팅장갑'
PU코팅장갑은 일반 장갑에 폴리우레탄 수지를 입힌 장갑으로 주로 작업용으로 사용된다. 아직 국내에선 활성화되지 못했지만 선진국에선 공장이나 가정 등 여러 곳에서 이용된다.
보통 작업용으로 쓰이는 일반코팅장갑에 비해 느낌이 부드럽고 손가락 움직임이 편해 작업 능률도 훨씬 좋다.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땀 냄새도 잘 나지 않는 특징이 있다. 손가락 부분 끝만 코팅한 제품은 반도체나 휴대전화, 자동차를 제작하는 공장에서 애용된다.
경신사에서는 주력 제품인 PU코팅장갑 외에 정전기를 방지하는 카본코팅장갑이나 구리코팅장갑, 유리를 만져도 상관없을 만큼 질긴 다이니마 장갑 등 코팅 장갑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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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경북 영천시 대전동 596-3번지
제품 PU 코팅장갑 등 10여 종
면적 1천300평
직원수 37명
매출 28억 원(2005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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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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