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버지가 들려주는 옛 이야기)빗물 자국을 세어라

얘야, 지난주에 이어 이번에도 왕비 뽑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마.

지난주에 마지막으로 남은 세 처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말았지.

세 처녀는 세 번째로 나온 문제를 풀기 위해 골몰하였단다. 세 번째 문제는 건너다 보이는 궁궐 지붕의 골이 몇 개냐 하는 것이었지. 두 처녀는 문제가 나오기가 바쁘게 눈을 가늘게 뜬 채 지붕을 바라보며 '하나 두울' 세기에 바빴지.

그런데 마지막 처녀는 태연하게 땅바닥을 내려다 보더래.

그러자 임금이 물었지.

"아니 그대는 어이하여 지붕을 쳐다보지 않는 것이오?"

"네에. 지금은 해가 떠있지만 조금 전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빗물이 기왓골을 타고 내려왔으니 그 자국만 세면 될 줄 믿습니다."

"흐음, 과연 그렇구료."

임금은 고개를 끄덕였지.

결국 세 처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목화', '가장 큰 새는 어떤 새냐?'는 질문에는 '먹새'라고 대답하고, 마지막 문제에서 빗물 자국을 센 마지막 처녀가 왕비로 뽑혔단다.

어때, 제대로 뽑혔다고 생각되지 않니?

참, 왕비 뽑기라면 세종대왕 이야기도 빼놓을 수가 없구나.

세종대왕이 젊었을 때에 전국을 두루 살피기 위해 길을 떠났단다. 왕자의 몸이었으니 사람들이 알아보고 모두 인사를 올렸지.

그러던 어느 날, 왕자 일행이 한 농촌 마을을 지나고 있었단다. 사람들이 모두 길가에 엎드려 인사를 올렸단다. 그런데 한 처녀는 뽕을 따면서 본척만척 하더래. 신하 한 사람이 그 처녀를 나무라며 말했지.

"그대는 어찌하여 왕자님한테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이오?"

그러자 그 처녀는 계속 뽕을 따며 당당하게 말했대.

"네, 백성이 있어야 왕자님도 계신 줄 압니다. 저는 지금 누에 기르기가 더 급합니다. 지금 빨리 뽕을 주지 않으면 누에가 죽게됩니다. 그러면 백성들이 헐벗게 될 것입니다. 왕자님께서도 그러한 백성의 처지를 헤아리실 줄 믿습니다."

이에 세종대왕이 말했지.

"과연 그러하도다. 어느 집안의 따님이신가?"

"네에, 제 아비의 성은 청송 심(沈)가이고 이름은 온(溫)이옵니다."

이리하여 이 처녀는 훗날 왕비로 뽑혀오게 되었대.

그 왕후가 바로 유명한 소헌왕후(昭憲王后)란다.

그 뒤 소헌왕후는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는데 뒷바라지를 아주 잘 하였단다. 그리하여 왕후의 아버지 심온이 누명을 쓰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 왕후도 평민으로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으나, 세종대왕과 많은 신하들이 왕후가 평소에 내조를 잘 하였으니 평민으로 내려 앉힐 수 없다 하여 궁궐에 그대로 모셔지게 되었단다.

어떠냐? 이처럼 판단력이 뛰어나고 제 할 일을 다한다면 존경을 받게 되는구나.

심후섭 아동문학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