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권의 책] '빨간 물고기를 따라간 날'

'예전에는 나도 즐거웠고 성질부리는 일도 없이 아주 착했어요.'

소녀 반짝이는 엄마를 병으로 잃은 슬픔에 늘 사나운 표정을 짓고 심술궂은 행동을 하는 아이다. 스스로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아빠와 주변 사람들에게 심술을 부리고 우는 것밖에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소녀는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빨간 물고기의 안내를 받아 이상한 마을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친절한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된다.

대만 출신 저자가 쓴 '빨간 물고기를 따라간 날'(장원저 글/토토북 펴냄)은 대만 정부가 어린이 최우수 도서로 추천한 책이다. 어려운 현실에 부딪힌 아이가 내면의 상처를 극복하고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 동화다.

어린 아이들 역시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는 때가 있다. 부모나 형제처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말할 것도 없고 또래들 사이에서의 따돌림이나 공부 스트레스, 주변의 잔소리처럼 크고 작은 일들이 널려 있다. 한 번 닫힌 마음의 문은 좀처럼 열기가 힘들다. 상상력은 이런 때일수록 큰 힘을 발휘한다. 현실의 고난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경험 속에서 교훈을 얻고 힘을 얻는다.

책 '빨간 물고기…'는 저 유명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모티브로 만든 동화다. 굳이 서양의 동화에 비유한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 쯤이랄까. 공통점은 모두 판타지다.

반짝이가 빨간 물고기를 따라 간 곳은 '잊힌 마을'. 복사꽃이 만발한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다. 그런데 이곳은 망각의 세계다. 이곳의 아이와 어른들은 현실 속에서 잊힌 사람들이다. 반짝이는 치매에 걸려 행방불명됐던 동네 아저씨도 이곳에서 만난다. 잃어버렸던 강아지도 뛰놀고 있다. 선생님에게 압수된 만화책이나 구슬, 보내지 못한 편지도 죄다 이곳에 있다.

반짝이는 잊힌 물건을 찾아주는 이 마을 고물장수에게 엄마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한 번 죽은 사람은 되살릴 수 없는 법. 소녀는 고물장수의 도움으로 과거를 보여주는 TV를 통해 엄마를 본다. 애정 가득한 엄마를 보면서 반짝이는 눈물을 흘리며 다짐한다. 착한 아이가 되기로.

그때 반짝이의 손등에 빨간 하트표시가 요란하게 깜빡인다. 현실에서 누군가 자기를 애타게 찾고 있다는 표시. 아빠다. 이곳에서 그냥 행복하게 살까, 아니면 돌아갈까. 반짝이는 아빠가 기다리는 현실로 돌아오기로 결심한다. 가족과 친구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사납던 소녀는 어느새 사려깊은 딸로 훌쩍 자랐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