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곧 기회…영재학교
대구과학고 진학을 목표로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던 아이가 교육과학연구원 수업 중 다른 친구들을 통해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영재학교라는 게 생긴다는데 거기 원서를 낼까 말까가 아이의 질문이었다. 처음 생기는 학교니까 시스템이 안정돼 있지 않아 자칫 그릇될 수도 있다며 주저하는 느낌도 담겨 있었다.
그에 대한 내 답변은 이랬다. "과학고랑 전형 일자가 겹치지도 않고, 세상을 살다 보면 오히려 위기가 곧 기회일 때가 많다. 시작하는 상태라 위험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자리가 잡히면 가고 싶어도 아무나 갈 수 없는 학교로 바뀔지도 모른다. 그냥 한 번의 기회가 더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지원 정도 해 보는 거야 뭐 어떻겠느냐."
결국 원서 마감 이틀 전에 정보를 얻은 우리는 지원서에 추천서, 생활기록부, 상장 복사 등을 하느라 바쁜 하루를 보냈고 마감일에 부모가 직접 부산으로 가서 원서를 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2차 시험에 합격하자, 사교육의 힘을 빌리지 않았음에도 전국적으로 어느 정도 실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여기고 만족했다. 3차 캠프를 갔을 때도 그냥 똑똑한 아이들과 3박 4일의 캠프에 다녀오는 기회를 얻은 행운쯤으로 여겼다. 캠프를 마치던 날 아이를 데리러 갔다가 우연히 한 중2 여학생이 "굉장히 잘 하던 언니"라고 우리 아이를 명명해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저렇게 말해 주는 걸 보면 중간은 갔나 보네. 어쩌면 합격할 수도….' 기대가 피어올랐지만 과욕은 금물이라고 생각했다.
▶자율적인 교육과정
큰 기대 없이 입학하게 됐지만 영재학교는 우리 아이에겐 최고의 교육시스템이었다. 누가 참견하고 제재를 가하는 데 익숙하지 않던 아이,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를 위해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신과 경쟁하던 아이였으니 말이다. 1학년 공부를 해 보면서 자신감을 얻은 아이는 이미 어떤 어려움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존이 형성된 상태였다. 2학년부터는 스스로 분야를 정하고, 수강할 학과목도 정하고, 그에 따른 부담이나 위험에 대한 저울질도 혼자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아이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갔다.
▶눈을 떠요! 위탁교육
영재학교 1학년 여름에 미국과 러시아 해외 위탁 교육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었다. 미국은 그동안 서너 번 다녀왔고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 같아 러시아로 결정해 2주일간 다녀왔다. 2학년 때부터 제2외국어를 배우는데 독일어를 하고 싶다고 해서 겨울방학 한 달간 독일에 다녀오기도 했다.
3학년 봄에는 AP시험에 중간고사에 SAT 준비까지 겹쳐 눈코 뜰 새가 없었는데 교환학생으로 온 아이를 홈스테이하게 되었다. 목전에 시험이 여럿 버티고 있는데도 아이는 그 친구들까지 데리고 용인 민속촌으로, 서울 경복궁으로 쏘다녔다.
그해 여름에 뉴욕에 있는 콜럼비아 유니버시티에 한 달간 서머스쿨을 가게 되었다. 이 또한 영재학교에서 비용을 다 지원받아 용돈 몇 푼 들고 갔으니 얼마나 큰 혜택을 본 것인지 모른다. SATⅠ이 남아 있는 상태라서 부담을 느끼고 미국행을 포기한 친구까지 있는 상황이었던 걸 감안하면 다소 무모했지만, 얼마나 공부하느냐보다 동기나 자극이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앞으로
가방을 들고 밤을 가르며 교문을 나서는 안쓰러운 장면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고도 대통령 장학금이란 혜택을 누리며 카네기 멜론 대학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다. Natural Science와 Humanity Science를 심도 있게 공부하는 프로그램에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앞으로 또 무엇을 하게 되고, 어떤 활동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거나 분명한 사실 하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든 아이에게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진행부터 결과까지 모두 의미가 있을 것이란 사실이다.
▲글을 쓴 김광숙 씨의 딸 김기연 양은 대구 이곡중학교-한국과학영재학교를 거쳐 올해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 학부모들의 자녀교육기 원고를 기다립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느낀 마음, 어려웠던 부분, 소중한 경험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전자우편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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