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림프구성 백혈병 판정을 받은 김수영(가명·23) 씨는 최근 1년 사이 3번이나 골수이식수술을 취소했다. 백혈병 치료를 위해 한국 조혈모세포은행에 골수(조혈모세포)를 신청했지만 기증자의 거부로 수술이 번번이 무산됐기 때문. 이들은 "수술을 위해 휴가를 내기 힘들다.", "가족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골수기증을 거부했다. 김 씨는 현재 골수가 일치하는 마지막 사람인 4번째 골수 기증자를 찾아나섰다. 만약 4번째 기증자마저 거부하면 그의 모든 희망은 사라지게 된다.
이처럼 골수를 기증하겠다고 동의한 뒤 이식수술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는 골수를 주겠다는 희망자는 점점 늘고 있는데도 수술로 연결되는 건수는 오히려 해마다 줄고 있는 것이다. 몇몇 기증자들은 환자가 지급한 병원비로 혈청생화학검사 등 이식에 필요한 종합건강검진까지 받고도 기증을 거부해 혈액암 환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 실제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골수기증 희망자는 1만 6천975명으로, 2003년에 비해 5천여 명이 늘었지만 실제 골수이식 건수는 오히려 100건이나 줄었다.
그러나 골수기증자 역시 골수기증 동의와 골수이식 수술 동의의 차이 및 제도적인 무관심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골수기증은 개인의 동의로 가능하지만 골수이식 수술은 가족의 동의까지 필요해 대부분의 기증자들이 가족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는 것. 또 골수기증자는 이식을 위해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 동안 입원을 해야 해 기증자의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기증자들의 편의를 제공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제도적인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친동생에게 골수이식을 하기 위해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던 최대원(35) 씨는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영세기업이었던 회사는 그의 빈자리를 일주일 동안 방치할 수 없었던 것. 그는 "혈연 간이라 수술대에 올랐지 남의 일이었다면 쉽게 희생을 각오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 골수 기증자와 상담했던 한 사회복지사는 "본인이 기증을 희망해도 가족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투철한 희생 정신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기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기증자 사정으로 수술이 무산된 이유 중 기증자 가족의 반대가 16%, 본인의 거부가 25%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기증이 무산된 이유로 기증자 측의 기증거부가 전체 62%를 차지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 9월 27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을 일부 개정했다. 내년 10월부터 시행될 개정안에 따르면 기증자가 근로자인 경우 사용자 측이 유급휴가를 제공하고 기증자가 공무원인 경우 병가로 처리하는 등 기증자의 편의를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보건복지부에서 현재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개정안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채혁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 이식담당자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증자들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요구해 기증자와 환자 모두가 상처받는 시스템은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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