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겨울 우리학교에서는 논술반을 운영했다. 연구부장인 나는 기존 보충수업 외에 오후에 남아서 2~3시간씩 지도하기로 계획하고 우선 참여교사 구성부터 했다. 교직원 회의에서 강의를 맡을 교사를 구했는데 놀랍게도 동참하겠다는 교사가 없었다. 그 때만 해도 논술의 광풍이 거세지 않을 때였다.
하는 수 없이 후배교사를 섭외했다. 우선 국어를 담당한 나 외에 수학, 과학, 경제, 국사 5개 영역의 교사로 팀을 만들었고 그들과 영역별 1개씩의 주제를 의논했다. 매 차시마다 논제에 대한 내용강의는 전공교사가 진행하고 학생들이 낸 작품은 첨삭하고 평가했다.
첫 시간. 학생들에게 논술하는 방법과 작성 요령을 설명하고 간단한 주제 아래 개요도 짜 주면서 직접 작성해 보게 하였다. 실망스러웠다. 2008학년도, 이 학생들부터 논술고사를 시행한다고 해서 어느 정도 기초를 갖추고 있으리라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준이 그야말로 천차만별. 참여한 30명이 다 달랐다. 순진하게 희망자를 받은 결과였다.
더 한심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2회 차에 강의를 나온 현직교수 시간. 하도 마치지 않아 강의실로 가 봤더니 학생들은 2시간째 계속되는 강의에 지루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학생들의 수준에 지나치게 높은 전공 수준의 강의 내용이 문제였다. 결국 20시간 정도의 프로그램이었지만 학생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실패했다.
그러다 올해 우리 학교는 교육부 지정 방과후학교를 운영했다. 강좌 신청을 받아 보니 논술 강좌가 압도적이었다. 성원에 관계없이 일단 많은 강좌를 개설했고 강좌마다 차이를 부각시켜 모집한 결과 논술에 학생이 대거 몰렸다. 외부강사와 본교교사가 반반이었다. 2개월 후 강좌가 끝난 다음 조사를 해 보니 학생들의 만족도는 중간 이하였다. 이 또한 실패였다.
다음에 다시 모집을 해 보니 강좌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성원이 된 반도 몇 개 있었다. 우선 학생들을 모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재미가 있어야 글 쓸 마음도 생기니까. 그러나 진정성을 가진 지도야말로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학생은 학교에 있든 학원에 있든 실력 있는 교사를 찾게 마련이라는 중요한 교훈도 얻었다.
이제 우리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실패하지 않을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실패는 실패가 아니었다. 구성원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을 한 것이다. 유능한 선생님들이 나서면 안 되는 일이 없다. 다만 논술 수업 담당 교사를 자율학습 감독 등에 동원하지 않는 등의 지혜와 교육부의 지속적인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학교 논술도 바로 설 수 있다.
석귀화(도원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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