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보기 힘들지만 예전에는 한 장씩 뜯어내는 일력이 있었다. 한약방이나 금은방에서 주로 손님들에게 나누어 주던 것으로 참 귀한 달력이었다. 영화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날짜가 하루하루 찢겨져 나가는 것을 본 기억이 있어 서양에서도 일력이 있었던 듯하다.
달력은 영어로 캘린더라고 한다. 고대 로마에서는 제관(祭官)이 초승달을 보고 매월 초하루를 보신각 타종을 하듯 뿔 나팔을 불어 알렸고, 이 초하루 날을 캘렌드(calend)라고 하는 라틴어에서 '선포'한다라는 동사어미를 붙여 캘렌데(calendae)라 했다한다.
달력은 농경문화에서 유래된 듯하다. 달이 변하는 모습, 별자리, 기후의 변화 등을 오랫동안 관측한 끝에 이집트·그리스·로마를 거쳐 후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한 태양력이 기원전 46년에 율리우스력까지 변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고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중국에서도 분명 달력이 존재했으며, 연초에 사주팔자를 보는 것처럼 태음력을 이용하여 사람의 운명까지 미리 짚어보는 점성술에도 응용되고 있다. '자축인묘...'로 시작되는 십이지는 모두 12진법의 순환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다 '갑을병정...'으로 시작하는 십간이 더해지면 120년의 조합이 만들어지고, 다시 음과 양에다 만물을 빚어내는 기를 나타내는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등 오행의 10진법이 더해지면 모두 1200개의 커다란 순환을 만들어 낸다.
2007년은 정해년 돼지 해다. 돼지는 복과 부를 상징한다. 더욱이 내년은 600년 만에 찾아온다는 황금 돼지띠의 해라한다. 이 해에 태어난 아이는 음양오행상 재물운이 있어 다복하게 산다는 속설을 믿는다면, 2007년 출생률은 정부가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크게 증가할 것 같다. 의문은 과연 그럴까하는 것이다. 간단한 역사적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자.
600년 전이면 1407년인데, 조선 태종 7년째 되던 해이다. 1407년에 태어난 아이들이 출생해서 제법 사회활동을 했을 법한 시대를 살펴보자. 이들이 12세가 되던 1419년은 세종이 즉위한 이듬해로 이종무가 쓰시마를 정벌하던 해이다.
계속 12년을 더해 가다보면 1455년 세조 즉위와 맞물린다. 이처럼 돼지해가 세 번을 지나가던 36년 동안은 장영실의 해시계, 물시계, 6진설치, 계해조약, 훈민정음 창제 등 세종대왕시대의 평화와 문화 르네상스 시대와 거의 겹친다. 이렇게 보니, 과히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역사는 상당히 수줍음을 많이 타는 것 같다. 자신을 다보여주기보다, 반 정도만 삐죽이 보여주고는 본질적인 것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을 두고 조용히 만들어 가는 것 같다. 달력이 끝자락이 보인다 해서, 한 해가 다한 것은 아니다. 역사는 연속하는 것이지, 단절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세계를 들여다보면, 문명과 물질이 진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용은 바뀐다하더라도, 역사의 반복이 불가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국과 같이 족보라는 개념을 아직도 지니고 있는 전통적 씨족 중심 사회에서 개인의 가족사를 꼼꼼히 짚어 가다보면, 각 집안과 성씨들의 특성이 보존되어 내려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한국만큼이나 가족·부모·자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문화도 많지 않다. 핵가족의 바람이 불면서, 길거리에서, 전철 안에서 다양하고 급격하게 변해가는 젊은 세대들의 '신문화'를 느끼지만, 극한적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가족중심의 사고와 정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외환위기가 몰아치면서 핵가족이 잠시 사분오열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아직도 온 가족이 옹기종기 다시 모여 지난 일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러한 날들이 올 것이라 믿고 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한 맘으로, 차별하지 말고, 인내하면서, 나보다 너를, 내 가족보다 다른 사람의 가족을 위해 먼저 기원해야한다. 600년 전 황금 돼지해에 태어났던 조선시대 아이들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을 삶을 누렸으리라 믿으며, 새해에 태어날 아이들이 다 자라서 활동할 때쯤, 한국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로 가득차길 소망해 본다.
곽수종(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댓글 많은 뉴스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5·18묘지 참배 가로막힌 한덕수 "저도 호남 사람…서로 사랑해야" 호소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