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마음으로 시작한 2006년이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서른 일곱이 되는 한 식구의 가장입니다. 올해는 유난히 '경기가 안 좋다, 살기 점점 힘들어진다.'는 말씀들 많이 하시더군요. 제게도 2006년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참 힘든 한해였습니다. 형사생활을 시작한 지는 2년 남짓 지났습니다. 2004년 6월부터 강력범죄수사팀에서 일해왔으니까요. 속칭 '순사밥'을 먹은 지도 만 8년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제게 유난히 별난 한 해였던 것 같습니다. 지난 10월 초 추석연휴 직전부터 시작된 밤샘근무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과거 이보다 더 어려웠던 때도 있었을 테지만 지금 당장의 고된 일상 때문인지 어깨를 짓누르는 하루하루가 더욱 힘겹게 느껴집니다.
"아빠, 담배 피우지 말고, 살도 좀 빼고 일찍 들어와서 무동도 태워줘."
지난 10월 성서 유부녀 납치 암매장 사건이후부터는 이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마누라 잔소리처럼 늘어놓던 딸아이의 금연 설교도 기억 속에서만 더듬을 수 있네요. 지난 16일부터는 차량연쇄방화사건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지면서 매일 밤샘 매복을 하다보니 겨우 전화통화로만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딸아이가 자고 있는 달서구 파호동 집이 지척에 있지만 깨어있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는 건 뒤로 미뤘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오전 0시부터 4시까지 이어지는 매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새우잠을 자고 있던 아내만 부스스 눈을 뜹니다. 부부의 직감일까요. 아무리 조용히 문을 여닫는다 해도 단박에 알아차리고 일어나 앉는 아내 보기가 안쓰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강력범죄수사팀으로 간다고 했을 때 극구 만류했던 아내였으니까요. 그렇게 밤손님처럼 집으로 들어오다보니 아내와도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합니다. 씻고 잠자리에 들면 오전 5시. 낮밤이 바뀌어 조금 뒤척이다보면 6시나 돼야 잠이 들죠. 오후 2시에 다시 출근해야 하기에 낮 12시쯤에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혼자 일어나 주섬주섬 밥 챙겨먹고 또 다시 수사본부로 향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잠깐 얼굴이나 보고 갈까."
며칠 전에는 제가 오는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겠다고 딸아이가 아내에게 조르더라는군요. 딸아이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지만 금세 잊습니다. 하루 빨리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우리 가족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죠. 그나마 밝아오는 새해에는 방학이라 딸아이가 저를 깨워주겠죠. 못본 새 더 많이 자랐을 딸아이에게 30분 정도라도 잠을 아껴 무동도 태워줘야겠네요.
"남의 일이 아닙니다."
지난달에는 차량방화 관련 밤샘근무에 나섰던 동료 형사가 숨지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서부경찰서에 근무하던 시절 10개월 정도 같이 근무하기도 했던 '형님'이었는데 안타까움에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굉장히 건강한 분이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남의 일이 아니더군요. 같은 처지인 형사들끼리도 "가정에 못할 짓"이라고 대놓고 얘기할 정돕니다. 어제는 영하 7, 8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속에 자전거를 타고 순찰에 나섰습니다. 땀이 다 나더군요. 몸살 기운인지, 몸살을 물리치는 열기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몸이 재산입니다."
남들이 모두 송년회 얘기를 하지만 송년회는 고사하고 추석 후부터 '모임'이라는 단어가 머릿 속에서 사라진 것 같네요. 뭐가 힘든지도 모를 정도로 눈 깜짝할 새 1년이 흘렀습니다. 다가오는 2007년에는 돼지띠인 제게도 복이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형사 업무에도 좀 더 형통한 수사관이 되길 빌어봅니다. 무엇보다 연초에는 반드시 차량방화범을 잡을 겁니다. 몸이 재산이라는 말은 비단 형사들끼리 하는 얘기가 아닐 겁니다. 독자여러분들도 건강 하나만큼은 꼭 챙기시길 바랍니다. 저는 돼지처럼 넉넉한 한 해를 위해 또 달려갑니다. "충~성~!"
김태진기자 jiny@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野, '피고인 대통령 당선 시 재판 중지' 법 개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