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흰 눈을 기다림

줄곧 포근한 겨울 날씨를 보이다가 지난 주말, 강풍과 함께 곳곳에 눈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대구는 늘 눈이 비껴가는 지형이어서 여간 서운하지가 않다. 곳에 따라 눈이 주는 폐해도 있어 모든 사람이 다 눈에 대한 기대가 동일하다 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겨울철에 눈이 주는 낭만성은 으뜸가는 정서라 아니할 수 없다. 주말뉴스도 눈 소식이 헤드라인을 차지했으나 아쉽게도 대구는 눈이 피해갔다.

눈을 기다리는 정서가 남다른 것은 왜 일까. 그건 다분히 눈의 흰 색깔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침에 문을 열고 밤새 내린 눈을 보는 순간, 매번 그 흰색이 주는 아름다움은 전율이 일 만큼 신비로웠다. 더하여 어렵고 힘들었던 모든 일이 다 용서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잠시나마 일상의 근심이 사라지며 이 순백의 순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부산해지곤 했는데 그러면서 그 눈이 쉬 녹을까봐 마음은 또 얼마나 졸였던가.

'에바 헬러'에 따르면, 흰색은 상징학의 관점에서 볼 때 모든 색 중에서 가장 완벽한 색이라 한다. 화가에게 흰색은 근본적으로 가장 중요한 색이며 다른 색의 혼합으로 만들 수도 없다. 또한 검정에 비해 긍정적이며 삭막하기까지 한 청결함은 물론, 텅 비어 있으면서 가볍고 또 고요하며 명백한 점 등 여러 상징을 지닌다.

세상을 창조할 때 제일 먼저 있었던 빛도 실상 흰색에 대한 상징이며, 부활한 그리스도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듯이 흰색은 종교적으로 신의 색이기도 하다. 갓 태어난 아기가 제일 먼저 먹는 음식인 젖도 흰색이며, 최고의 예복은 흰색이다. 흰색은 절대적인 색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의 색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유독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흰 눈에 대한 설렘과 기대를 흰색에 힘입어 그 타당성을 입증해 보고 싶은 까닭에서이다. 사실 눈이 오면 누군가가 그리워지기도 했고, 흰 눈 속에 있으면

어떤 미움이나 갈등도 하얗게 덮을 너그러움이 생기기도 했다. 말하자면 흰 눈이 사람들의 감각을 마비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그것은 앞서 이야기한 흰색이 주는 긍정적이며 특별한 속성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흰 눈을 그리워하며 그 축복 같은 힘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이번 겨울에는 정말 멋진 눈이 한 번이라도 펑펑 내렸으면 좋겠다. 그리고 흰 눈 속에서 눈을 뭉쳐 자신의 데드마스크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질문해보고 싶다. '나는 얼마나 고요하냐, 그리고 순수하냐'라고.

이규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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