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표(50) 한미FTA체결지원단장의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왜 'FTA 전도사'가 됐는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는 동국대학교 철학과 재학당시, 학생운동을 했으며 이후 대우자동차에 위장취업해 1980년대 중반 대우차 파업을 주도하는 등 노동운동을 치열하게 벌였다. 대우그룹 노동조합협의회 사무처장, 대기업 노동조합연대회의 사무처장, 민주노총 건설준비위원회 위원장 등 노동운동의 '선봉'에 섰던 홍 단장은 1995년 대우자동차에 복직한 이후 인생의 행로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복직 이후 대우자동차 영국법인에 파견됐던 그는 이후 2001년까지 영국에 머물며 '세계의 동향'을 깨쳤다고 말했다. 그 당시 경험이 FTA를 통한 '글로벌 대한민국'을 외치게된 계기가 됐다는 것.
노무현 정부와 인연을 맺은 이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거쳤으며, 국무총리 비서실 시민사회비서관으로 들어가 방폐장, 혁신도시 조정 등 국내 갈등조정 역할도 맡았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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