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 등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가운데 우리 역사 교육에도 상당한 변화 조짐이 일고 있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제 역사 떠받들기에 대한 대응과 함께 다음 세대들에게 세계와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길러주고자 하는 의도도 보인다. 국사 교육 강화와 국사 교과서 검정화가 핵심이다.
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데 대해서야 반대할 사람도 명분도 없다. 그러나 교과서 검정화는 문제가 제기된 지 오래고 최근 교육혁신위원회의 제안까지 있었지만 찬반 논란에 휩싸여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국사 교육의 현실과 강화 필요성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할 뿐만 아니라 교과서 검정화 문제에 대해서도 찬반 양측의 주장을 정리하고 자신의 견해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 국사 교육 개편과 의미
7차 교육과정이 시작되면서 가장 홀대받은 과목이 국사였다고 관련 학자와 교사들은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국사 시간이 줄어들고 고등학교에서는 아예 선택과목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사회 교과에 포함되다 보니 국사나 세계사를 전공하지 않은 교사들이 가르치는 경우도 나타났다.
숱한 문제 제기 끝에 교육부는 최근 이를 반영한 '역사 교육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2010학년도 중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사회 교과를 역사와 사회 과목으로 나눠 3년 동안 주당 5시간씩 배정한다. 고교에서는 국사와 세계사를 합해 역사 과목을 만들고 1학년 때 주당 3시간씩 가르치는 한편 2, 3학년 때는 한국문화사, 세계역사의 이해, 동아시아사 등 3개 가운데 선택하도록 한다.
이에 대한 여론은 찬성 일색이다. '역사는 과거를 규명함으로써 현재와 미래를 판단케 한다는 점에서 역사 교육의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올바른 역사관은 국가나 사회의 진로뿐 아니라 개인의 삶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신문 칼럼) '우리의 뿌리이자 한민족의 걸어온 길을 선택과목으로 가르치는 우리가 중국과 일본에게 역사를 왜곡하지 말라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한심한 일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국정브리핑 칼럼)
▨ 국정 교과서와 검정화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서는 교육과정 편성, 학교 교육여건, 교사의 수준 등과 함께 교과서의 질을 높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역사 과목의 위상 제고에 걸맞게 역사적 진실을 담은 올바른 교과서가 만들어져야 한다. 국사와 세계사를 합쳐 역사라고 지칭한 만큼 한국사·세계사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풍성한 학문적 연구 성과가 뒷받침돼야 한다.(중략)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좋은 교사와 좋은 역사 교과서를 통해 수준 높은 역사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신문 칼럼)
학교 교육에서 사용되는 교과서는 국정, 검정, 인정 도서로 나뉜다. 국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교육의 통일성을 위해 대학이나 연구소 등에 위탁해 편찬한 교과용 도서로 초등 대부분 교과와 중·고교의 국어, 국사, 도덕 등이 포함된다.
검정 교과서는 단체나 전문가 그룹 등 민간이 제작해 교육부의 승인을 받은 도서이며 인정교과서는 민간이 제작해 시·도 교육감의 인정을 받아 특정 지역이나 특정 학교에서만 사용되는 도서를 말한다.
검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검정 기준과 집필상의 유의점 등을 담아 검정 교과서 공고를 내고, 출판사가 기준과 절차에 맞춰 도서를 만들어 검정 신청을 하면, 교육부가 각계 전문가들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승인 여부를 가리는 과정을 거친다.
교육부는 2004년 국정 교과서를 폐지하고 민간에 교과서 저작을 넘기는 방안을 모색했지만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고, 지난해 2월에도 검인정 교과서 확대 계획을 내놓은 바 있다. 이번에 검정화 방안을 내놓은 교육혁신위는 지난 1년 동안 실태 조사, 전문가 협의 등을 거쳤으며 공청회 등을 통해 공론화한 뒤 최종 입장을 교육부에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편향된 역사 교육 위험
교육혁신위의 교과서 검정화 방안은 중·고교 국어, 국사, 도덕 교과서와 초등학교 영어, 음악 등 5개 교과서를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꾸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가장 논란이 큰 교과는 국사다. 학자와 교사들 사이에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반대측에서는 "학생들에 대한 교육의 문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자들의 연구는 역사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지만 가르쳐야 할 것과 가르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7차 교육과정 시작 당시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국근현대사 검정 교과서의 좌편향(左偏向)논란과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을 분단의 원인처럼 서술하고,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과정에서 생긴 독재와 부패를 부각시켜 부정적인 인식을 심으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는 우호적으로 서술한 교과서가 전국 754개 고교에서 사용돼 채택률 50%를 넘어섰다. 이처럼 드러난 문제점도 해결하지 않은 채, 검정제를 중·고등학교의 국사 교과서로 확대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신문 칼럼)
이런 인식은 검정 국사 교과서에 대한 우려로 이어진다. '국사 교과서가 검정으로 바뀌면 이런 식으로 입맛에 맞는 부분만 왜곡해 두드러져 보이게 하는 좌파 교과서들이 쏟아질 게 뻔하다. 미래 국민의 국가적·역사적·민족적 정체성을 결정하는 국사 교과서마저 친북 편향의 손에 넘겨져 또 다시 이념적 혼란의 소용돌이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신문 사설)
▨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
국사 교과서 검정화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다양한 지식과 사고를 중시한다. 다양한 시각에서 해석될 수 있는 역사를 국가가 정해준 시각에서만 보도록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국가주의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 경향과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교과서 발행 주체가 국가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것은 세계적 추세다. 모든 교과서를 국가가 발행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 등 몇몇밖에 없다. 대부분의 문명국가는 국정 교과서를 아예 없애거나 최소화하고 다양한 민간 교과서 중에서 학교가 선택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역사 문제가 뜨거운 동아시아의 현실과 비교해도 국정 교과서는 의미를 잃는다.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 문제를 계기로 3년간 존속했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에서 일본 학자들이 "한국은 아직도 국정교과서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서 검인정교과서를 간행하는 일본에 시비를 거느냐"는 식으로 지적했을 때 국제사회가 우리의 교과서 제도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를 일깨워주었다.'(신문 칼럼)
한국 근현대사 검정 교과서가 이렇다 할 부작용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검정화의 근거가 된다. '이념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인 근현대사도 검정제가 된 마당에 국사를 검정도서로 못할 이유가 없다. 전문가들의 지적대로 역사는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매일신문 사설)
검정 절차만 충실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정 교과서 역시 국가에서 집필상의 유의점을 미리 제시하고 완성된 책을 납본받아 엄정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합격·불합격을 가리는 검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교과서를 민간에서 발행한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신문 칼럼)
하나의 교과에서 국정 교과서 하나만을 고집하면 학생들은 하나의 정답만 강요받는 셈이다. 국가가 정해준 이론과 내용만 배워서는 지식기반사회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기 힘들다. 같은 시대를 사는 이들이 공유해야 할 보편적인 가치관은 검정 교과서에도 충분히 담을 수 있다.
찬성론자들은 중국, 일본과 마찰을 빚는 지금 상황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뿌리와 정체성이 무엇인지,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시각들을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중국과 일본의 주장이 어째서 지나치고 왜곡됐는지 깨닫고 반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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