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판잣집서 손자 둘 키우는 최원자 할머니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골목길의 가로등 불빛이 구멍 난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스며듭니다. 우리 세 식구가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2평 남짓한 방은 가로등 불빛에 겨우 환해집니다. 제대로 먹이지도, 입히지도 못한 손주 성훈(가명·14)이와 성지(가명·12·여)는 어린 나이에 벌써 삶의 고단함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잠들 수 없는 깊은 밤이면 못난 할미는 간절히 기도합니다. '제발 아이들의 고통을 저에게, 눈 감을 날이 머지 않은 저에게 모두 돌려주십시오.'

성훈이는 눈을 뜨자 컴퓨터 앞에 앉습니다. 학교가 갑갑하다며 벌써 8개월째 방 안에 틀어박혀 게임만 합니다. 타이르고 윽박도 질러봤지요. 하지만 제 말은 소용이 없습니다. 아비, 어미도 버렸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버린 탓이겠지요. 아이들은 햇볕 속으로 나가길 싫어합니다. 부모의 사랑마저 사라져버린 세상에 그 어떤 희망도 없다는 듯, 아이들은 오늘도 단 한 발짝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여름이면 온갖 지린내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재래식 공동화장실을 써야하는 것도, 언제나 허리를 반쯤 굽히고 대문을 열어야 하는 것도, 한겨울 슬레이트 지붕 사이로 얼음장 같이 차가운 비를 온몸으로 맞아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죄 많은 할미 탓 같아 이젠 윽박지르지도 화를 내지도 못합니다. 제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손주들의 가슴 속엔 상처 뿐일테니까요.

애들 아범(45)은 5년 전 집을 나갔습니다. 순하디 순한 놈이었는데 어찌 그리도 복이 없는지···. 트럭을 몰다 사고를 내 몇 백만 원식 물어줘야 했고,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서 재산을 다 까먹었지요. 하는 일마다 틀어지고 깨졌습니다. 이런 운명도 있냐며 울기도 수십 번, 결국 아범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자취를 감춰버렸지요. 며느리도 이내 사라졌습니다.

비 새는 판잣집에 사는 부모없는 가난한 아이들, 웃음만은 잃게 만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니 누구보다 밝고 튼튼하게 키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이들의 낮빛에서 절망만이 드리워지더군요. 성지가 묻더군요. "할머니, 쥐 안나오는 집으로 우리 이사가면 안돼?"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이렇게 고운 내 새끼들의 살갗엔 쥐가 할퀴고 간 흔적들이 군데군데 남아있습니다. 죄책감으로 하얗게 밤을 새웠습니다.

이 악물고 집을 옮겨보려고 했습니다. 점점 차갑게 돌변하는 성훈이, 집을 두려워 하는 성지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했지만 발버둥칠수록 가난의 수렁은 더 깊어지더군요. 몸뚱아리라도 성하면 파출부라도 하겠지만 일흔을 바라보는 노인을 쓰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지요. 아범이 몸서리 치도록 미웠습니다. 차라리 죽지, 죽고말지. 그래야 정부보조금으로 지 자식들 살 만한 집이라도 구할 수 있지, 내 뱃속으로 낳은 자식을 원망했습니다. 도대체 이런 일도 있는 것인지, 제 아들에게 차용증을 써 준 것이 잘못돼 저는 신용불량자가 됐답니다.

6일 오후 7시쯤 중구 대봉동의 한 허름한 판잣집. 성훈이는 구부정한 자세로 모니터를 응시하며 게임에 열중하고 있었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저는 최원자(가명·67) 할머니는 손자를 피해 밖으로 나와 있었다. "성훈이가 점점 변해가네요. 어린 것 가슴 속에 무슨 응어리가 저리 졌는지, 독기를 품고 달려드는데···." 할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성훈이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 냈다. 어두컴컴하고 좁아터진 방 안에서 올려다보니 구멍뚫린 천장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언제 바꿔 끼웠는지 모를 형광등은 자꾸 깜빡거렸다. 성훈이에게 "학교를 왜 가지 않느냐."고 묻자 "답답하니까."라고 짧막하게 답했다. 일어서보니 머리가 천장에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길게만 느껴지는 이 방에서 성훈이와 성지, 할머니는 절망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저희 '이웃사랑'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최신 기사

07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김민석 국무총리는 20일 전남을 방문해 이재명 대통령의 호남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며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그는 '호남이 변화하는 시...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경북 봉화의 면사무소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은 식수 갈등에서 비롯된 비극으로, 피고인은 승려와의 갈등 끝에 공무원 2명과 이웃을 향한 범행을 저질...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