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남아는 韓流, 국내서는 日流

'라멘' 먹고 '데스노트' 보고…부쩍 가까워진 日流

김아중의 S라인이 돋보이는 영화 '미녀는 괴로워', 지난 2003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외과과장 자리를 둘러싼 의사들 간의 권력다툼을 치밀하게 그린 드라마 '하얀 거탑'.

최근 국내영화와 TV드라마를 휩쓸고 있는 주요 작품들의 원작은 일본만화 혹은 일본소설이다. 영화 '플라이, 대디, 플라이' 역시 재일교포작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이 원작이며 문근영이 주연한 '사랑따윈 필요없어'도 일본드라마를 각색한 것이다. 영화 '데스노트'는 별다른 홍보 없이도 국내에서 흥행에 성공하면서 청소년들 사이에 '데스노트 신드롬' 현상을 빚기도 했다.

드라마 '대장금' 이후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 음악이 아시아지역을 휩쓴 '한류' 바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에서는 일본 대중문화 바람이 일고 있다.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본 대중문화가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소설과 만화, 영화, 드라마 등 일본의 대중문화는 완전개방 이후 너무도 우리에게 친숙해졌다. 일본음식 마니아 층이 두터워지면서 일본음식점도 성업 중이다. 일본인이 직접 경영하는 일본음식점만 대구에 3곳이 생겼다. 일본만화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타짜'와 '식객' 등 일부 국내만화를 제외하고 서점에서 팔리는 대부분의 만화는 일본산이다. '미스터 초밥왕'에서 불기 시작한 음식만화는 지난해 '신의 물방울'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신의 물방울'은 웰빙바람을 타고 늘어나기 시작한 와인 애호가들이 한 번씩은 봐야 하는 필수만화책으로 떠올랐다.

▶일본문화의 매력

일본소설 출간이 늘어나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자 시내 대형서점들은 일본소설 매장을 따로 꾸며놓기도 한다. 지난 6일 교보문고. 야마모토 후미오의 '절대 울지 않아'를 보고 있던 한은옥(24· 대구교대 졸업) 씨는 "재미있잖아요."라는 한마디로 일본소설을 정의했다. 드라마 '하얀 거탑'의 원작소설도 드라마의 인기여세로 잘 팔리고 있는 소설 중의 하나. 한 씨는 "(하얀 거탑에는) 의사와 환자가 나오지만 어려운 의학용어는 나오지 않아 의학드라마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라며 "의사들간의 파워게임이 정말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 쉽게 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긴 일본소설을 즐겨보는 독자층은 20, 30대 여성이 많다. 그들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 혹은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을 섭렵해왔다. 정미애(20) 씨도 "일본소설은 심리묘사를 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쿨'한 연애와 사회에 대한 담담한 시선을 주제로 한 것이 일본소설의 특징으로 꼽힌다. 한국소설이 사회적 이슈에 집착하는 사이 개인주의적 삶에 익숙한 젊은 독자들이 일본소설 쪽으로 이동해 간 것이다.

일본소설은 지난 2003년 열아홉 살의 와타야 리사와 스무 살의 가네하라 히토미가 아쿠가타와상을 공동으로 수상하면서 그해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와타야 리사)이 일본에서 200만 부 넘게 팔렸다. 이 책은 한국에서 일본소설붐을 주도한 책으로 꼽힌다. 그 후 '냉정과 열정 사이'(2004), '공중그네'(2005) 등이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떠올랐고 지난해부터는 일본의 추리소설까지 국내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출간된 일본소설은 581종에 177만 권에 이른다. 일본소설의 인기는 올해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반짝반짝 빛나는'(에쿠니 가오리)과 '어깨 너머의 연인'(유이카와 게이), '프리즌 호텔'(아사다 지로) 등의 소설은 이미 국내영화사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고 있다.

▶일본음식점

'대구 속의 작은 일본'을 표방하고 있는 일본음식점. 일본인이 경영하는 일본음식점은 산시로와 사야까, 미야꼬 등 3곳이 있다. 사야까가 지난 2002년 월드컵 전 가장 먼저 자리 잡았다. 사야까의 하야타 히로아키 사장은 "일본식 덮밥과 돈가스, 라멘과 우동 등 대부분의 메뉴가 일본에서 먹던 그대로의 맛"이라면서 "개업하면서부터 꾸준히 손님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문화 트렌드에 대해 그는 "양국 간의 경계에 사는 사람으로서 더 이상 반가울 게 없는 일"이라며 "한류와 일류(日流)를 통해 양국이 좀 더 가까워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야까는 대구의 자매도시인 일본 히로시마시의 '안테나 숍' 역할도 맡고 있다.

미야꼬의 다케모토 가쯔시게 씨는 "좁은 실내가 일본의 우동집과 똑같다."며 10대에서 80대까지 고객층은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음식은 한국음식에 비해 담백해서 맛있다."면서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김치를 안 먹는 사람도 많은 것처럼 요즘 트렌드와 일본음식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일본음식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덧붙였다.

◇ 일본 라멘집 '신주쿠'

일본인이 아니지만 일본맛을 제대로 내는 일본식당이 대구에 있다.

'신주쿠(新宿)'는 대구 도심 중앙시네마 옆 골목안에 자리잡고 있다. 간판에는 'since 1953년'이라고 적혀있지만 현재 위치에서는 14년밖에 되지 않았다. 신주쿠의 창업자인 장진상 씨가 와세다대학으로 유학을 갔다가 아르바이트로 후쿠시마(福島)에서 우동집을 연 것이 1953년이어서 50년이 넘은 일본식당인 셈이다. 장 씨는 1957년 귀국해서 식당을 열었고 1981년 작고한 후에는 며느리 허인숙(54) 씨가 물려받아 일본분식집을 계속해왔다. 1990년대초 삿포로 우동이 인기를 끌자 허 씨는 '삿뽀로면'으로 간판을 바꾼 적도 있다.

신주쿠의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시나소바'와 '모밀소바'. 모밀소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신주쿠에 오면 달라진다. 7일 오후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인데도 이 곳을 찾은 김순복(40·삼성생명 FC) 씨는 "원래 모밀국수를 안좋아해서 먹지를 않았는데 이곳에 와서는 꼭 모밀만 먹는다."고 말했다. 횟집을 하는 이정란(39) 씨는 "모밀육수가 강하지않아서 부담스럽지 않다."면서 "이곳 모밀소바는 유부초밥과 함께 먹는 것이 궁합이 맞다."고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신주쿠 시나소바는 도쿄식처럼 뻑뻑하지않고 국물맛이 시원한 게 특징이다.

허씨는 "손님이 너무 몰리면 제대로 대접하지못하게 돼요. 지금처럼 우리 집을 좋아하는 사람만 찾아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서명수기자 didero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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