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기다린다는 것

구십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할머니의 부지런함은 여전하시다.

지금쯤 집 앞 골목길을 몇 번이고 빗자루로 쓸고 계실 것이다. 시부모님과 할머니만 계시는 고향집은 명절이나 되어야 북적거린다. 며칠 전부터 처마 밑에 거미줄을 걷어내고 구석구석 청소를 하라는 할머니 성화에 아버님의 손길도 바빠졌을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할머니의 방에서는 기다림의 시간이 발효되고 있을 것이다. 검은 보자기에 둘러싸인 콩나물시루가 윗목에 놓여 있을 것이고, 그 옆에는 나란히 술항아리가 자리해 있을 것이다. 콩나물시루도, 술항아리도 할머니에겐 행복한 기다림이다.

가끔씩 다니러 갈 때마다 나는 할머니 방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작은 창 하나만이 천장 가까이에 나 있어 날이 밝아도 방 안은 늘 어둑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부스럭거리는 할머니의 기척에도 일어나기 싫어서 눈감은 채 시치미를 떼고 있을 때가 많았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바가지로 시루에 물을 끼얹고 계시던 할머니. 그 모습이 무슨 의식을 치르듯 경건해 보였다. 차르르 차르르 물이 쏟아지고 나면 점점 물소리가 약해지면서 나중에는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

방문을 열고 푸르스름한 새벽 마당으로 할머니가 나가신 후에도 그 소리는 계속되었다. 누워서 물방울 소리를 세다가 지쳐갈 즈음이면 톡. 톡. 톡. 또 다른 소리가 들렸다. 항아리 안에서 술이 익어가는 소리였다.

거품 방울이 꽃잎처럼 생겨나면 한 잎씩 튀어오르며 터지는 모양새가 잠에 취한 나를 흔들어 깨우는 듯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할머니 방은 타악기의 연주회장 같았다. 차르르 차르르. 톡.톡… 제법 박자에 맞춰서 자신의 소리를 내고 있는 기다림의 요정들.

시간이 흐르고 그리움이 쌓여서 곰삭을 때까지 그들은 노래를 계속했다. 콩이 수줍게 발을 내밀고, 술이 익어 입안에 감길 때까지 할머니의 방은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에 잠겨 있었다.

아침에 전화를 드렸더니 보름 전부터 콩을 불려서 싹을 틔웠는데도 어쩐지 이번에는 영 시원찮다고 걱정이셨다. 가게에 가면 언제나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들인데도 할머니는 이 지긋한 기다림을 고집하신다.

딱히 이야기 나눌 상대도 없는 할머니에게는 날마다 시루를 들여다보고 그것들과 눈맞춤하는 일이 포기할 수 없는 소일거리였을 것이다. 통통하게 자란 콩나물을 들여다보면서 맛있게 먹을 증손자를 생각하실 것이고, 시큼하게 익어가는 동동주 냄새 속에 술 좋아하는 막내사위 얼굴을 떠올리실 것이다.

할머니에겐 기다리는 일이 무시로 찾아드는 그리움과 외로움을 치유하는 한 방편이었으리라. 기다림의 결과보다는 기다림의 시간 그 자체가 더 큰 의미가 있듯이. 어쩌면 할머니의 장수비결은 바로 그런 기다림이 아니었을까.

나도 가끔 살아가다 보면 느닷없이 마음 안에 그리움이 사무칠 때가 많다. 그럴 때는 보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꾹꾹 눌러서 마음 안에 담아놓는다. 어쩌면 우리 인생 대부분이 기다림의 연속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안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일도, 잠시 떨어져 있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일도,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려는 농부의 마음도 다 기다림이다.

차곡차곡 쟁여놓은 그리움이 기다림의 시간으로 발효되어 곰삭는 일. 기다린다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그리움을 만들어가면서 뭉근하게 익혀진 그것들은 천천히 느껴보는 것이 아닐까.

'산다는 것이 곧 기다리는 일이므로.'

김 혜 주(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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