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심한 황사를 본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누런 모래바람으로 자욱한 하늘은 마치 영화에서 본 핵전쟁 후의 어느 날 같았다. 어두워진 사방은 분간이 되지 않았다. 형광빛의 하늘은 불길하게 느껴졌다. 저 속에서 숨을 쉬었다간 폐가 모래로 꽉 막혀버릴 것 같은 무서움증이 들었다.
지난 1일 최악의 황사가 한반도를 덮쳤다. 대구는 전국에서 최악이었다고 한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손님이라지만 이쯤 되면 반갑지 않은 수준을 넘어 두렵다. 주변 나라에 주는 피해가 이렇게 극심하지만, 중국 정부는 예전부터 이어져 온 자연현상이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을 질 사항은 아니라며 회피하고 있다. 중국 정부를 향해 사막에 나무라도 심으라고 외치고 싶은 심정이다.
'모래의 악령'… '사막의 초록왕국(이미애 글/파란 자전거 펴냄)'에서 주인공은 봄마다 찾아오는 거칠고 잔인한 모래폭풍을 이렇게 부른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황사나 식목일을 즈음한 기획도서 정도로 얕잡아본 것을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책의 맨 뒷페이지, 사막 한가운데서 나무를 심는 부부의 사진은 어떤 울림을 지니고 있었다.
'사막의 초록왕국'은 중국 마오우쑤 사막 1천400만 평을 푸른 숲으로 일궈낸 여성 '인위쩐'의 삶을 기록한 실화다. 타클라마칸 사막, 고비 사막, 비단지린 사막과 함께 중국의 4대 사막에 열거되는 마오우쑤 사막은 황사의 진원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인위쩐은 1985년 갓 스물에 결혼, 남편 바이완샹과 함께 이 황량한 사막에서 20년 넘게 풀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었다. 사막은 혹독했다.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모래 구덩이를 파고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사람 발자국을 대야로 덮어놓고 가끔 열어볼 만큼 외로움에 시달렸다. 모래폭풍은 그 중 최악이었다. 인위쩐은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보기로 한다. 부부는 묘목장에서 일하고 받은 품삯으로 어린 묘목을 사서 심는다. 거센 모래폭풍이 불어와 애써 뿌리를 내린 나무들이 날려가도 인위쩐 부부는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60만 평의 사막을 나라로부터 임대받아 본격적으로 숲을 가꾼다. 모래폭풍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만들고, 풀씨를 뿌려 모래밭에 새싹이 돋아나게 한다.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버려진 땅에 나무가 자라고, 사람들이 모이고, 길이 생겼다.
책 속에 등장하는 '기적은 신의 선물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이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소설이었다면 상투적인 문구로 그쳤을 텐데, 실화이고 보니 그 울림이 더하다. 인간의 신념과 행동이 정말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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