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 아파트 헬기장은 무늬뿐"

헬기장 의무화 아파트 대구 모두 6곳"…대형화재시 무용지물

우리 아파트 옥상에는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을까?

지난 2월 17일 발생한 서울 신도림 주상복합아파트 화재. 1명이 숨지고 59명이 부상당한 큰 화재였지만 아파트 옥상에 헬리포트(헬리콥터 착륙장)가 있어 구조 헬기를 이용,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다. 건물 아래층에서 불이 났기 때문에 연기를 피해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헬리콥터가 실어나른 것.

고층 아파트 시대가 열리면서 대구에도 이 같은 헬리포트가 속속 생겨나고 있지만 법의 맹점과 아파트 사업자의 안전불감증으로 '무늬만 헬리포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건축법에 따라 헬리포트를 만들어야 하는 11층, 바닥면적 1만㎡ 이상 대구 고층 아파트는 수성구 2곳, 북구 2곳, 중구 1곳, 달성군 1곳 등 지난해 말 현재 모두 6곳이지만 대구소방본부 항공대의 현장 조사 결과 6곳 전부가 헬리콥터 착륙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간이 너무 비좁고 난간까지 있기 때문.

현행 건축법은 헬리포트의 길이와 너비를 22m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건축물 옥상 바닥의 길이와 너비가 각각 22m 이하일 경우 헬리포트 길이와 너비를 10m까지 줄일 수 있게 하고 있다. 소방본부의 6인승 헬리콥터 기체 길이가 12.9m임을 감안하면 10m는 아슬아슬하게 겨우 착륙할 수 있는 수준. 더 큰 문제는 현행 건축법에 건물 안전을 위해 헬리포트 주위에 높이 1m 20㎝ 이상의 수직 난간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헬리포트 길이 및 너비가 10m 안팎일 경우 헬리콥터 착륙 자체가 불가능하다.

실제 이 때문에 법이 정하는 최소한의 공간만 확보하고 난간까지 설치한 대구 고층 아파트 헬리포트는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이곳에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하면 헬리콥터의 균형을 잡아주는 꼬리날개가 난간에 걸릴 수밖에 없고, 꼬리날개가 파손되면 헬리콥터가 뒤집히게 된다.

이처럼 법의 모순과 이를 악용하고 있는 아파트 사업자, 행정기관의 무관심이 맞물리면서 무용지물 헬리포트가 양산되고 있다. 주상복합 신축이 잇따르고 있는 대구에 올 한 해에만 10곳 가까운 고층 아파트 입주가 예정돼 있지만 대부분의 헬리포트가 마찬가지 사정이다.

소방본부 항공대 관계자는 "선진국에는 수평 또는 비스듬한 난간을 통해 헬리콥터 착륙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며 "무늬만 헬리포트인 아파트를 방치한다면 고층 아파트 화재 때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법 개정이나 행정기관의 관리 감독 등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준기자 all4yo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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