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변했다고들 한다. 지난 한미 FTA 대국민 담화 때는 '또 무슨 허튼소리 하려나'는 의구심을 깨고 확신에 찬 설득과 논리로 '진작부터 저랬었더라면…'하는 우호적 평판을 이끌어 냈다. '反美(반미) 좀 하면 어떠냐'거나 '반미로 재미 좀 봤다'던 분이 지난주엔 '영어 때문에 우리 국민이 기죽지 않고 불안하지 않도록 영어 잘하는 나라가 되자'고까지 했다.
무엇이 그를 변화시켰을까. 아마도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빈번했다는 해외순방을 통해 넓은 세상을 만나본 체험 덕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內治(내치)는 뒤죽박죽 만들어 놓고 잦은 해외순방으로 세금만 쓴다는 억지비판도 없잖았다. 그러나 '사람은 大處(대처=큰 도시동네)로 나가봐야 큰 그릇이 된다'는 옛말대로 앞으로 좋은 변화만 계속 된다면 노 대통령은 가장 큰 해외순방 학습효과를 본 연수생이 될 것 같다.
그는 국회의원을 지내고 대통령에 당선될 때까지도 미국 한 번 안 가본 걸 큰소리치 듯 했던 인물이다. 그런 안목과 세계관으로 정치'안보'경제'문화 모든 내치가 세계와 맞물려 돌아가는 글로벌시대의 국정을 맡았으니 나라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랬던 그가 자신의 지지 그룹인 진보세력의 離反(이반)을 무릅쓰면서까지 미래지향적 국가과제를 과감히 밀고 나가려는 합리적 소신을 보이고 있음은 분명 고무적 변화다.
지지도도 10%나 올라갔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발목이나 잡는 것 같아 보이던 보수언론까지 칭찬 일색이다. 그는 자신의 작은 변화를 통해 눈엣가시 같기만 하던 언론도 '잘하는 것은 잘한다고 해주는 집단'이구나 하는 새로운 언론관에 눈 떴을 것이다. '대통령 못해먹겠다'던 소리도 이제보니 내탓이었구나하는 自省(자성)도 들 것이다. 어느 국민도 자기네 지도자가 계속 죽을 쑤며 나라를 흔들고 그때마다 손가락질과 욕설로 부아풀이나 해대고 싶은 국민은 없다.
거의 4년 만에야 세계를 보는 눈이 뜨인 것 같아 아쉽긴 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그를 둘러친 과거에 묻힌 인맥의 병풍을 걷어내고 밀실 코드의 장막 안으로부터 열린 세계로 나왔다. 그는 그가 임명한 코드 장관들과도 차별되고 있다. 어느 신문에 보도된 한미FTA 워크숍 회의 장면만 봐도 그러했다. 140명의 장'차관, 청와대 비서관 등이 참석했었다는 회의 장면을 보면 그와 그의 코드 부하들은 이제 눈뜬 지도자와 아직도 감고 있는 자의 차이를 보게 한다.(이하 보도 인용)
▶장관 : FTA 명태와 민어 어업이 '엄청난'피해가 우려된다. ▶노 대통령 : 구체적 자료를 내놔라. 명태어업에 배 몇 척에 몇 명이 종사하고 있나. ▶장관 : 명태는 원양인 경우 700명 정도다. ▶노 대통령 : 그러면 피해는 얼마나 될 것 같나. ▶장관 : 15년 기간이 있으니까 단계적으로 減隻(감척)하고 나면… ▶노 대통령 : 그런걸 어떻게 어업계 피해가 '엄청나다'는 식으로 보고할 수 있나. 명태시장이 얼마고 선원은 몇 명인데… 어떻게 보상하겠다. 정부는 어느 정도 예산을 들이면 될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하라. 피해보고만 과장 보고할 게 아니라 경쟁력을 어떻게 강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대책을 집중적으로 마련해야지.
회의장의 한 꼭지 대목이다. 대화의 맥락 속에서 변화된 리더십과 아직도 헤매고 있는 듯한 옛 코드 부하들의 한계가 드러난다. 당장 코앞에 놓여있는 국민연금법 문제는 어떨까. 하루 800억 원씩의 연금 부채가 쌓이는 마법 같은 제도를 두고 국회의원들은 표밭 계산으로 법은 부결시킨 채 기초연금제만 통과시켰다. 남은 다음 순서는 대통령의 결단이다. 그가 일부 국회의원들의 낡고 썩은 포퓰리즘을 거부권으로 깨부수고 엄청난 표를 잃을 걸 알고도 망국적인 법을 바르게 고쳐낸다면 그의 이번 변화는 계속 믿어도 될 멋진 변신이 될 것이다. 뒤늦은 頓悟(돈오:별안간 깨달음)지만 지도자의 변화에 박수를 보내주자. 개헌발의 따위로 모처럼의 변신 이미지를 되까먹지 않을 것도 바라면서…
金廷吉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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