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구벌 대로를 직선으로 관통하는 나의 출퇴근길은 매우 삭막하다. 그래서 퇴근할 때는 조금 두르지만 도심을 벗어난 경북의대 사잇길을 이용한다. 모교인지라 아련한 추억이 있고 고풍스런 의과대학 건물이 이국적이고 몽환적이며 침엽수 플라타너스 우거진 나뭇길은 로맨틱하다. 그 길을 지날 때면 우선 서행하고 날씨라도 좋을 라 치면 차창을 올려 주변의 속삭임을 들으며 삶의 분주함 가운데서도 찰나의 여유를 오감으로 즐긴다. 머릿속에는 잡동사니처럼 얽혀져 있는 해야 할 일의 목록이 떠오르며 시간을 재촉하지만 애써 무시해본다. 살면서 내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혹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하나가 '바쁘다'는 종류의 어휘다. 모두들 바쁘다고 아우성과 비명을 외쳐댄다.
어느 날 내 무릎의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조급한 마음과 따라오지 못한 몸의 부조화로 생겼으리라 짐작하고 서글퍼 한 적이 있다. 평소에 이런 불명예스런 훈장을 몇 개씩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내 몸을 혹사한 상흔 같아 씁쓸하다.
미국선교사 일행이 아프리카에서 짐을 운반하는데 원주민 짐꾼들이 갑자기 멈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 벌어진 돌발 사태에 당황한 선교사들이 그들을 달래고 으르고 흥정도 해봤지만 묵묵부답 이였다. 이유를 물으니 "너무 빨리 왔어요. 이제는 혼이 우리의 몸을 따라 잡도록 기다리고 있어요" 란 이해하기 힘든 답변에 선교사들이 진리를 깨달았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그렇다. 우리는 뭔가에 쫓겨 뒤도 안돌아 보고 자꾸 앞으로만 나아간다. 정신없이 뛰다보면 무엇을 향해 가는지 내 영혼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다그칠 대로 다그친 몸은 내 무릎에 상처처럼 망가져 있다.
이제는 잠시 멈춰 삶의 질주 속도를 서행 모드에 맞춰 내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기다려 맞이하게 하고 삶의 신비가 내재된 내면의 세계에 눈을 돌려보고 싶다.
정현주(고운미 피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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