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대구시내 꽃 가게에 꽃이 동난 적이 있었다. 특별한 날도 아닌 터에 그 많은 꽃집마다 꽃이 떨어진 것이다. 수백 년 안동땅을 지켜 온 종가댁 종부의 부음이 전해진 때문이었다. 안동은 물론 대도시 대구의 꽃을 몽땅 바칠 만큼 살아 생전 그 종부의 후덕함과 명망이 컸던 까닭이다.
한 가문의 맏며느리로서 종부의 역할은 많다. 적장자를 출산, 가계를 잇는 일에서부터 해마다 수십 번 돌아오는 제사를 모셔야 하고 일가친지와 이런저런 방문객을 대접하는 일까지 쉴 틈이 없다. 종가의 재산과 유물을 관리하고 경조사를 챙기며 집안 아녀자의 우애를 다지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도 종부에게 맡겨진 책무다.
그래서 종손은 없어도 종부는 있어야 된다고도 하며 제사를 모실 때도 둘째 잔은 종부의 차지가 되기도 한다. 설날, 집안의 연장자에게 맞절 세배를 받기도 하며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종부에게는 하대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곳간 열쇠를 움켜 쥔 채 위엄을 떨치는 화려함보다 이 시대 종부의 자리에는 고난의 그림자가 더 많이 드리워진다.
소설 '혼불'에서 청상과부 청암부인이 외는 "내 뼈를 내 홀로 일으키리라"는 말처럼 인내 없이는 스스로에게 던져진 짐을 질 수가 없다. 지난해 전국 명문 종가 종부 60여 명을 초청, 덕담을 건넸던 문화재청장은 종부들의 질타에 혼이 난 적이 있다. 의무만 있고 권위는 사라진 시대에 고택을 지키며 살아가는 고충과 애환이 가감없이 토로됐다. 빈한한 살림에도 대대로 내려온 유물을 손대지 않고 나라에 기증한 종부의 소식을 듣노라면 종부는 일반 여염집 며느리와는 달라도 많이 다른 모양이다.
고된 탓일까, 종가집 맏며느리는 외면받는 자리가 됐다. 봉제사 몇 차례도 마다하는 판에 대종가의 맏며느리 자리를 맡겠다고 나서는 이가 드물어졌다. 얼마 전 안동시 도산면 퇴계 이황의 종가 안방에서 17대 종부가 될 새색시가 맏며느리 큰상을 받았다. 안채 종부 자리가 오랫동안 비어 있던 종가에 외국에서 공부한 신세대 며느리가 들어온 것이다. 어찌 고심이 없었겠느냐만 '영광된 자리를 기꺼이 맡겠다'고 나섰다 한다. 그저 한 집안의 혼사지만 종택의 땅 경북북부지역 사람들은 너나없이 경사로 반긴다니 이 땅의 맏며느리들이여 스스로에게 축배라도 들어봄이 어떨까.
서영관 북부본부장 seo123@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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