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1번 국도 동남해안을 따라

포항~구룡포~울산~기장을 잇는 31번 국도는 우리나라 동남해안선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에 봄 풍경이 남다르다.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해송 군락과 하얀 파도, 물살을 가르며 오가는 고깃배와 정겨운 어촌 풍경은 해안도로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이다.

이름난 관광지라면 상춘객들로 북적대기 일쑤인 요사이, 인파에 치이지 않고 오붓하게 봄나들이 할 요량으로 31번 국도를 이용, 감포에서 기장까지 달려본다.

◆"나 죽거든 동해에 묻어라. 호국룡이 되리니"

해안에서 불과 200여m 떨어진 곳에 있는 문무대왕릉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661~681)이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신라를 지킬 뜻이 서린 수중 바위릉이다.

봉길해수욕장 자갈 해안을 힘껏 때리는 해조음은 아들 신문왕이 건네받았다는 만파식적의 소리인양 수중릉을 돌아 다시 밀려나간다. 멀지 않은 곳에는 신문왕이 부왕을 기리기 위해 지은 감은사 절터와 절 동쪽 약간 높은 언덕에 부왕의 수중릉을 바라보던 이견대가 있어 부자(父子)의 오롯한 정을 전한다.

◆반월형 자갈해안이 아름다운 강동해변

차창너머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파도를 한동안 보고 있자니 참 역동적인 느낌이 든다. 일상이 무료하거나 삶의 기운이 빠져 나갈 때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바닷가를 찾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월성 원자력 발전소 확장 공사장을 지나자 야트막한 고갯마루 길이 나타났다. 주변의 산세는 연초록 점묘법으로 빚어내는 봄의 캔버스가 그려진다. 해안국도는 이제 경북을 벗어나 경남으로 접어들었다.

내리막길. 저 아래 반월형 해변이 눈에 들어온다. 도 경계지역인 울산광역시 북구 신명마을. 마을 앞은 반월형의 자갈해변이 부채 살처럼 펼쳐진 확 트인 동해 남단 바다가 가슴 속까지 청량감을 불어 넣는다.해풍에 실린 상큼한 해초 향이 후각을 자극한다.

신명마을을 벗어나 울산으로 접어 들어본다. 장생포 고래 박물관이 있고 지역 특미 고래 고기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생포 고래 박물관

옛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던 장생포의 해양 공원 내에 세워진 고래 박물관은 1986년 포경이 금지된 이래 사라져 가는 포경유물을 수집, 전시하고 각종 고래 관련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2005년 개관됐다.

제1전시관 천장 가운데에 매달린 범고래 골격과 브라이드고래 골격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골격 아래엔 우리나라 연근해에서 실제 포경조업을 했던 포경선 진양 5호를 부분 복원해 놓았다. 한국과 세계 포경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포경역사관과 선사시대부터 이 지역에서 행해진 고래잡이를 바위에 새긴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가 재현돼 있다.

전시관 한 켠에 있는 3면 영상관. 깊은 바다 속을 유영하며 울부짖는 고래 음성과 함께 역동적인 고래의 삶이 비춰진다. 혹등고래가 바다 위로 치솟아 거대한 꼬리로 수면을 때리는 브리칭(Breaching)장면은 감동을 선사한다. 효과적인 먹이사냥을 위해 무리를 짓고 상하로 파상운동하는 모습은 실제로 고래를 눈앞에서 보는 듯하다.

제2전시관 입구에 들면 해저에서나 들을만한 웅장한 고래음성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전시관 중앙에는 실물크기의 한국계 귀신고래 모형(길이 13.5m)이 걸려 있다. 몸체엔 따개비 등 고착생물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놨다.

귀신고래는 매년 번식을 위해 우리나라 동해안을 규칙적으로 회유하는 종으로 그 이동경로와 전문 지식을 습득하도록 꾸며져 있다. 고래 해체장 복원관과 다양한 영상관 및 홀로그램 처리는 교육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제3전시관은 고래 뱃속길을 통과하면서 고래의 거대함을 체험하는 코너와 더불어 고래 생태와 진화, 광섬유를 이용한 세계고래 회유도, 바다 속 영상 여행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 야외에는 실제 포경선이 전시돼 있어 승선체험도 가능하다.(관람료: 어린이 500원, 어른 1천원)

◆역사의 아이러니 '서생포 왜성'

장생포 항을 빠져나와 온산공업단지를 통과, 다시 31번 국도를 타면 서생 방향으로 진행된다. 진하 해수욕장을 지나 오른쪽에 '서생포왜성'이라 적힌 작은 팻말이 나타난다. 궁금증이 생겨 마을 소로로 차를 몰았다. 500여m쯤에 작고 초라한 서생포왜성의 표지석이 보인다.

이 성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해 5월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일본식 평산성이다. 건립 당시 약 4만6천여 평에 외성 길이가 2.5km에 달하는 제법 큰 성으로 선조 27년 사명대사는 평화교섭을 위해 이 성을 4차례나 다녀갔다. 전란이 끝난 후에는 약 300년간 조선수군이 동첨절제사영으로 이용했다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현재는 주택과 밭이 주변을 침식해 성곽의 일부만 남아있다.

◆삶의 수고로움이 묻어나는 대변항

고리 원자력 발전소와 신고리 원자력 발전소 설비 공사현장을 지나면서 이정표에 월내, 일광이란 글씨가 자주 보이면 기장읍 대변항이 가까워진다는 증거이다.

항구를 중심으로 빙 둘러가며 천막 멸치가게들이 늘어선 대변항은 요즘 제철 맞은 멸치 전문항구답게 상인들과 외지인들로 북적인다.

피데기 굽는 냄새, 갈매기 울음소리, 호객소리, 은빛 갈치와 건어물…. 대변항은 그야말로 사람 살아가는, 비릿한 땀 냄새가 물씬 난다. 멸치가 가득담긴 상자(약 26kg)를 즉석에서 소금과 버무려 젓갈 담는 광경은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 파는 자와 사는 자의 가격흥정부터 올 김장때까지 맛있는 젓갈을 보관하는 노하우가 오가고 돈이 건네진다.

오는 20일~22일에는 기장 멸치축제가 열린다.

◇ 여행tip

장생포 해양공원 맞은 편엔 울산의 별미 고래고기를 맛 볼 수 있는 전문식당이 10여 곳 있다. 주로 고래고기 모듬과 찌개, 불고기가 주메뉴로 나온다.

이 중 모듬은 껍데기와 뱃살(우네) 오베기(꼬리부위 고기), 갈비살, 속살, 육회 등 12가지 맛을 낸다는 고래고기의 다양한 부위를 맛 볼 수 있는 대표적 메뉴이다.특히 육회는 특유의 맛과 씹는 느낌이 무척 부드럽고 오베기는 약간 질긴 듯 하나 오독거리는 맛이 일품이다.

이곳의 고래고기 전문식당 중 '원조고래맛집(052-261-5060)'은 장생포우체국 바로 왼편에 있다. 주인이 손님들에게 그리 살갑게 대하는 가게는 아니지만 맛은 토박이들에게 검증을 받고 있는 식당이다. 모듬 5만~15만원, 찌개와 특수부위 1만 5천원~3만원.

한편 대변항 일대에는 멸치회와 멸치찌개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맛은 어느 집이나 비슷하지만 기왕이면 항구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집을 찾아 주문하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항구전경을 덤으로 감상 할 수 있다. 멸치회 2만~4만원, 멸치찌개 1만 5천원~2만원.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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