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진옥섭의 藝人名人 노름마치

진옥섭의 藝人名人 노름마치/ 진옥섭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전통예술이 상아탑 속으로 빠져든 때문인지 예인(藝人), 예술가라고 하면 왠지 고상하고, 특별하며 예사스럽지 않다. 게다가 명인(名人)이라는 호칭까지 덧붙여지면 섣불리 흉내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온다.

분명 이 책은 '예인', 그것도 18명이나 되는 '명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노름마치'를 읽기 전에 노름마치의 의미와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반드시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노름마치는 '놀다'의 놀음(노름)과 '마치다'의 마침(마치)이 합해진 말로 최고의 명인을 뜻하는 남사당패의 은어. 노름마치가 나와 한판 놀면 뒤에 누가 나서는 것이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결국 판을 맺어야 했다. 이렇게 놀음을 마치게 하는 고수 중의 고수를 노름마치라 한다.

그럼, 노름마치와 저자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저자 진옥섭은 고수들의 무술(武)에 반했고, 날렵한 유선형 춤(舞)에 미쳤으며, 울음을 음악으로 만드는 재주를 지닌 무속(巫)을 따라 다녔으며, 그 모든 것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무(無)의 세계에 홀린 사내로 스스로 소개하는 전통예술 연출가다. 4무(武·舞·巫·無)에 사무친 전통예술 연출가와 노름마치, 이제 뭔가 앞뒤가 맞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책은 보도자료를 엮은 것이란다. 보도자료가 뭔가. 신문사나 방송사에 홍보를 요청하기 위해 쓰는 것이 보도자료인데, 명인 중의 명인이라 할 수 있는 노름마치들의 공연 보도자료가 어떻게 한 권의 책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예술의 경지에 이른 노름마치 공연이라 하더라도 그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 살아온 그대로의 모습을 전달해 기자들에게 예술의 전모를 깨닫게 해야 기대하는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더욱이 화려한 옛 명성을 유랑극단이나 굿판에서, 환갑 잔칫집에서 얻은, 때문에 문예지원금 수혜 대상에서조차 빠져 있는 평균 80세가 넘은 노명인(老名人)을 모시는 공연기획이라면 보도자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따라서 이 책은 먼 길 끝의 노인정과 다방, 시장의 국밥집에서 마주앉아 물은 예인들에 대한 이력서이자 촌부들과 회담한 결과이다. 이제 옛 명성을 접고 초야에 묻혀 근면한 촌부로 살아가는 분들이 대부분인 탓이다. 그러나 죽림에 누웠어도, 이룰 수 없는 것을 이룬 분들이었고, 그래서 말할 수 없는 경지를 드러내는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대로 뼛속에 스몄다.

기생, 무당, 광대, 한량으로서 제 홀로 찬란히 꽃 피웠으나 때론 홀로 남아 외로웠던 이 시대 마지막 예인들의 삶과 예술, 그 깊고 오묘한 세계를 다시금 무대로 이끈 연출가의 세세한 기록을 통해 우리는 노름마치들의 고아하면서 애절한 사연을 만날 수 있다. 1권 232쪽, 2권 236쪽, 각 권 1만 원.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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