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이성수 作 '후조(候鳥)2'

후조(候鳥)2

이성수

죽음보다 어려운

이켠의 삶을 모를려고

삶보다 어려운

이켠의 죽음을 모를려고.

바람에 불리어

부딪혀 찢어지는

忍苦의 바다를 넘어

무성하게 우거져 휘늘어지는

시간의 넝쿨 사이로

사름하던 목숨 걸고

아찔히 구름 걸린 서녘 몇 만리인가를

창백한 창백한 네 울음 되뇌며

아아 차라리 나도 함께 날 수 없을까

죽음보다 어려운

이켠의 삶을 모를려고

삶보다 어려운

이켠의 죽음을 모를려고.

까까머리 중1년생들에게 시인이란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지 일러준 선생이 있었다. 까만 눈의 열세 살 소년은 그래서 일찌감치 시인이 되려고 작정했다. 대단한 사람이 되어서 갓 서른에 남편을 잃은 홀어미에게 기쁨을 주려 했던 것이다. 1967년 당시 우리나라의 시인은 채 300명이 안 되었다고 한다. 전국 1%에 해당하는 시인들이 그 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그 때문인지 수십 명의 작가, 시인들이 그 학교에서 쏟아져 나왔다. 좋은 시, 위대한 시를 남기는 일도 보람 있는 일이겠으나, 씨 뿌리고 모종 가꾸는 일도 그 못지않은 중요한 일이다. 시도 모르는 사람들이 득세하고 살아가는 요즘 세상에 수십 명의 작가와 시인을 길러내는 것은 여간 뜻 깊은 일이 아니다. 시가 뭐관데 그리 호들갑이냐고? 이 난을 읽는 분들은 알 것이다. 시는 생명 감각이다. 시가 죽으면 자연이 죽고 사람도 죽는다. 이성수 선생은 그 학교에서 41년 동안 국어교사로 일했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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