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최영철 作 '기도'

기도

최영철

미사 시간에 한 아이가

미사 볼 때 제발 졸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내 조는 사이에 하느님이 다녀가시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무엇을 빌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는 그저께 집나간 반달이가

부디 좋은 주인 만나 잘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구박받다 울며 돌아왔을 때

집 비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빌었다

저 아이에 비하면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아

제발 무서운 짐승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잡아먹히더라도 개소주 같은 건 안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이들은 하느님이다. 부처님이다. 마호메트님이다. 빛이요, 물이요, 공기이다. 티 없이 웃는 아이의 모습처럼 세상에 아름다운 게 또 있을까. 지금 하느님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있다. 햇살 한 줌보다 더 착한 소원. 아마 하느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 같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빌어볼까. 이 지구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어볼까. 아프리카 여성들 음핵 절제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어볼까. 중국 장기 밀매업자들에게 간 빼앗기는 사람이 없도록 해달라고 빌어볼까. 이런 기도는 너무 사소해서 하느님이 쉽사리 들어주시지 않을 듯하다.

엄마 없이 할머니하고 사는 소라 어린이날 혼자 지내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어볼까. 한 달 새 체중이 10㎏ 빠져 췌장암 검사해놓고 기다리고 있는 옆집 윤식이 엄마 별일 없도록 해달라고 빌어볼까. 이런 기도는 너무 커서 잘 들어주시지 않을 듯하다.

옳지, 술집 종업원들에게 두들겨 맞은 아들 대신 주먹으로 복수한 어떤 재벌, 경찰에서 무사히 풀려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빌어야겠다. 아마 하느님은 들어주실 거야. 이 얼마나 눈물겨운 숭고한 부정(父情)인데….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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