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 시평] 향토음식을 국제 명품으로

▲ 김재수 농림부 농업연수원장
▲ 김재수 농림부 농업연수원장

얼마 전 식품 및 영양과 외식을 전공하는 전국의 대학교수 40여 명과 함께 경북 영양군 석보면의 두들마을을 찾았다. 이 마을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쓰여진 가장 오래된 요리책자인 '음식디미방(음식의 맛을 내는 비법)'을 관람하고 이 책에 나오는 음식을 복원해 보면서 현대적 발전 방안을 찾기 위해서였다. 300여 년 전 영양지방의 사대부집 안주인인 정부인 장씨는 음식디미방을 칠십을 넘긴 나이에 저술하였다. 집돼지구이, 숭어전, 가지찜 등 디미방에 나오는 조리법대로 복원해 본 음식은 담백한 건강식으로 현대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다는 것이 참여한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였다. 재료인 야생산나물은 대표적인 무공해 농산물로 고지방, 고칼로리에 허덕이는 현대인에게도 필요한 영양식이다. 음식의 맛은 물론, 색깔과 향기도 뛰어나고 전통적인 멋도 있었다. 흰색저고리와 옥색치마를 단아하게 두른 디미방 보존회원들의 자태는 마치 드라마 대장금을 보는 듯했다. 여기에 국제적인 안목과 현대적 경영기법만 가미되면 음식디미방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훌륭한 음식이고 고급 문화상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산악지대가 많은 경북지방에서 생산되는 많은 음식재료는 지역 음식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영양성분도 균형적이고 조리방법도 우수하다. 경북 농업의 발전이나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음식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영양지역뿐만 아니라 안동의 제례음식, 경주의 신라시대 음식 등 고을마다 전통과 역사가 있는 다양한 음식을 현대적 멋과 감각으로 새로이 개발한다면 훌륭한 상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음식은 이제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먹을거리가 아니다. 양에서 질을 추구하는 음식문화의 시대다. 전통 음식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여 고급 문화상품을 만들면 다른 나라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접근으로 성공한 사례는 많다. 진한 이탈리아식 커피인 에스프레소의 맛과 커피문화를 미국 스타일에 접목하여 성공한 것이 스타벅스 커피다. 스타벅스 커피는 커피의 맛을 넘어 멋과 문화적 가치를 갖고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세계적인 식품인 요구르트는 불가리아의 메치니코프가 요구르트의 젖산균이 장내 유해세균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를 이용하여 발전시킨 것이다. 음식과 문화를 접목하면 세계적인 상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지난달 농수산물 유통공사에서 우리 음식의 세계화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한식의 중요성을 재인식시킨 그 공청회에서는 한식 조리법의 표준화와 한식의 프랜차이즈화, 지역대학과의 연대강화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됐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시키며 해외 연수도 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다.

음식의 고급상품화에 못잖게 중요한 것이 있다. 음식을 담는 그릇, 음식을 차리는 식탁이나 소품, 음식에 수반되는 술 등 음식과 관련되는 식공간이나 식문화를 종합적으로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최고급 음식을 만들되 이에 어울리는 품격 높은 다양한 술을 제공하고, 고급 음식에 걸맞은 그릇, 분위기 있는 식탁 등이나 잔 등 모든 것이 포함된 복합적인 식문화 공간을 꾸며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부가가치도 높고 문화적인 우월성을 가질 수 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방할 수 없다. 그러한 인식으로 우리 음식문화를 발전시키면 농업도 살고 지역 경제도 활성화할 수 있다. 개방의 파고도 넘을 수 있고 한미 FTA가 체결돼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오히려 경쟁력을 가진 우리 음식을 미국 시장에 자리 잡도록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미국의 식품시장 규모는 연간 6천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 식품의 미국 시장 수출액은 3억 달러 남짓하다. 고급문화 상품으로 자리잡은 우리 음식문화가 식품합중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시장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게 되면 우리 농업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더 이상 농산물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많은 농산물이 미국 시장을 신규 개척하였다. 2003년 단감에 이어 2004년에는 박과류와 포도 시장을 열었다. 워싱턴에서 맛본 영천포도의 맛은 다른 어느 나라 포도보다 뛰어났다. 지난해부터는 파프리카 시장도 열렸으며 조만간 우리 삼계탕 시장도 열릴 예정이다. 그런 차원에서 경북지역의 향토음식이나 지역 특산물로 만든 다양한 음식을 개발하여 고급 수출 상품으로 만들기를 촉구한다. 이를 위한 업계는 물론 지역 대학과 지방정부 등 각계각층의 인식개선과 협조가 필요하다.

김재수 농림부 농업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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