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관념의 문이다.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연결하는 것이 시고, 시인은 그 세계를 넘나드는 관념의 화신이다. 그래서 시는 정신의 산물이며, 정신의 부스러기고, 정신의 정수이다.
그러나 시인 유홍준(45)은 육체노동자다. 경남 진주에서 3교대로 일하는 종이공장의 제지공이다. 평생을 육체노동으로 육신을 지탱하며 살아온 그다. 손이며 팔이며, 다리며 온통 상처투성이다. 그 상처의 피가 한꺼번에 쏟아졌다면 그의 몸에는 한 방울의 수액도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제지공답게 시를 이렇게 비유했다. "아트지에는 순도 90%의 가성소다(NaOH)가 들어간다. 이른바 양잿물이라는 독극물이다. 종이의 변질을 막기 위한 필요한 독이다. 종이가 보전되기 위해 독이 필요하듯이 나의 시도 세상에 필요한 독이 됐으면 한다."
그는 가성소다같이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천성이 상놈에 싸움꾼이라서 그렇지. 삼신할매 잘못 만나가지고…." 중학교 때 이미 4번의 가출을 했다. 고교 성적증명서를 떼 보면 60명 중에 59등으로 나온다. 생활기록부의 결석일수도 70일이나 된다.
고등학교도 겨우 나왔다. 그 이후의 삶도 마찬가지다. 86년에는 대구에서 과일행상도 하고, 영양의 산판에서 막노동도 했다. 공사장을 전전하는 삶이었다. 그래도 그는 한 번도 백수로 살지 않았다고 했다. "힘들어도 쉬지 않아. 내가 힘은 또 세. 아예 작정하고 사는 거야."
그의 눈을 보면 '독기'가 번득인다. 손목이 덜렁덜렁 거릴 정도의 상처도 상처가 아니라고 했다. 자가분열의 증거라고 했다. '저녁 喪家(상가)에 구두들이 모인다/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젠장, 구두가 구두를/짓밟은 게 삶이다/….'('喪家(상가)에 모인 구두들'). 유일하게 구두가 없는 망자의 집에 옹송그리며 모인 구두들의 삶이란 참으로 비루하고, 표일하다.
그의 시에는 가족사가 많이 등장한다. '…/상자마다 크고 검붉은 아버지의 포도를 따서 담는다 한 상자 또 한 상자 아버지의 벌렁거리는 심장을 담아 싣고 시장으로 내달려간다/….'('포도나무 아버지'), '…/미친 미친 개복숭아나무 아래 젊어 죽은 내 아버지의 두개골 파묻혀 있다/해골 해골 개복숭아나무 아래 해골….'('이장(移葬)'), '…/어머니 아랫배가 홀쪽한 어머니/배암으로 우시네 두꺼비로 우시네/….'('어머니 독에 갇혀 우시네')
아버지에게는 분노가, 어머니에게는 연민으로 가득 찬 시다. 아버지는 그에게 오이디푸스 같은 부성살해의 대상이었다. 술상을 뒤엎기도 여러 번이었다. 찢어지는 가난과 태생적 고통의 장본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고 했다.
"내 시집은 우리 가족에게는 금서지." 시를 쓰는 것도 그에게는 업에 업을 쌓는 일인지도 모른다. "마할놈(망할놈) 시 쓴다더니 가족사나 팔아먹고…그래…하긴 피해가지 못하니까." 시는 그에게 무속적 접신(接神)이나 마찬가지다.
고교 때 이미 대학노트 2권의 습작을 썼고, 소설도 제법 썼다. 시를 쓸 때만 자신 속에 이글거리는 '불'을 잠시나마 잠재울 수 있었다. '이 책이 없었다면, 벌레 잡는 이 책이 없었다면 미사여구에 밑줄 긋는 저 독자놈의 뒤통수를 갈겨주지 못했을 것이다'('벌레 잡는 책').
그의 시는 강렬한 시어로 가득하다. 언어의 멱살을 잡고, 가성소다 먹인 그놈을 방바닥 화투짝처럼 치고 패고, 거둔다. '…/나에겐 직방으로 듣는 약이 필요하다/그렇다 얼마나 간절히 직방을 원했던지/오늘 낮에 나는 하마터면 자동차 핸들을 꺾지 않아/직방으로 절벽에 떨어져 죽을 뻔했다/직방으로 골(骨)로 갈 뻔했다/….'('직방')
가난과 채찍질, 뜨거운 불은 여전히 그의 삶이다. 그러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풀었다. "너무 힘들었어. 사는 게… 어느날 아버지 산소에 갔어. 눈이 내렸더라. 봉분의 눈을 맨손으로 쓸었어. 여전히 찬 눈이었지. 내가 그랬어. '아부지, 아부지, 나도 힘드요.' 그러고 나니 눈물이 쏟아지데. 엄청나게. 그때(아버지 사망한 날)도 눈물이 하나도 안났는데 말이야."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 시인 유홍준 약력
1962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 1998년 '시와반시' 신인상에 '지평선을 밀다' 등이 당선돼 등단. 시집 '喪家(상가)에 모인 구두들'(2004년), '나는, 웃는다'(2006년)'가 있다. 2005년 한국시인협회(회장 김종해)의 '제1회 젊은 시인상' 수상. 2007년 제1회 '시작문학상' 수상, 제2회 '이형기 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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