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스트레스, 엄청나네!"
수학을 잘하지 못해 고민하는 학생들의 얘기가 아니다. 아파트에 들어가면서 눌러야 하는 비밀번호, 인터넷을 하는 데 필요한 비밀번호 등 디지털 생활에 따른 '수많은' 숫자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 곤란을 겪는 사람들의 절박한 하소연이다. 수십 개나 되는 비밀번호를 제대로 관리하고 활용해야 하는 현대인들로서는 괴롭기 그지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1. 황인호(37) 씨는 최근 아파트 현관 앞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회사 동료들과 가볍게 술 한잔을 걸치고 귀가한 그는 여섯 자리로 된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순간 당황한 그는 기억을 더듬어 다른 비밀번호를 눌렀지만 반응이 없었다. 맞지 않는 비밀번호를 수차례 누르면 몇분 동안 비밀번호가 입력되지 않는 시스템이기에 잠시 기다려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적잖게 반복했으나 문이 열리지 않아 끝내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침 집에는 아무도 없었고 휴대전화 배터리도 다 돼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기도 힘들었다.
30분 후 부인이 귀가, 같이 집안으로 들어간 황 씨는 딸의 생년월일을 조합해 비밀번호 6자리를 며칠 전 바꾼 것을 왜 모르느냐는 부인의 타박을 받고 "아차!"하며 무릎을 쳤다. "비밀번호를 혹시 외부인들이 알까봐 6자리로 된 번호를 한 달마다 바꾸고 있어요. 술도 얼마 마시지 않았는데 바뀐 비밀번호는 물론 번호가 바뀌었다는 기억조차 나지 않더군요."
#2.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권성일(40) 씨는 한 달에 몇 번씩 은행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은행 창구를 찾은 부모님이 통장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해 은행 직원으로부터 "ㅇㅇㅇ씨, 아드님 맞습니까? 통장 비밀번호가 어떻게 됩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권 씨는 "연로한 부모님들이 비밀번호를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으신 데다 통장에 비밀번호를 적어놓으려 해도 통장 분실에 따른 피해 우려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수년 전까지 한 자리 또는 두 자리였던 버스 번호가 세 자리로 바뀌어 번호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연로한 어르신들이 버스를 이용하는 것도 쉽지 않아졌다."고 덧붙였다.
황, 권 씨가 겪은 일은 결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당했거나 당할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숫자 때문에 가장 스트레스가 받는 경우는 바로 전화번호. 이재규(32) 씨는 얼마 전 휴대전화가 파손되는 바람에 200명이나 되는 전화번호 리스트 가운데 절반가량이 날아가고 말았다. 복구가 불가능해 하는 수 없이 그는 모아놨던 명함들과 동료들이 가진 전화번호를 토대로 잃어버린 전화번호 리스트를 불완전하게나마 회복시켜놨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을 갖고 있어 챙겨야 하는 전화번호가 많아 일일이 외우기가 힘들지요. 휴대전화 분실 또는 파손에 대비해 앞으로는 전화번호 리스트를 따로 컴퓨터에 저장해놓거나 노트에 기록해둬야겠습니다."
휴대전화 단축키를 주로 활용하다 보니 집 전화번호나 아내 등 가족들의 전화번호가 순간적으로 기억나지 않아 당황하는 일도 있다. 권 씨 경우 비디오 대여점에 갔다 집 전화번호 뒷자리를 몰라 오해를 받기도 했다.
신용카드가 여러 장일 경우 비밀번호도 여러 개일 수밖에 없고,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는 데에도 비밀번호를 외워둬야 하는 것도 고민거리다.
네 자리 수를 가진 아파트 동(棟)까지 등장, 이제는 아파트를 찾는 데도 8자리 수를 외워야 하는 지경이 됐다. 1동 101호에서 ㅇㅇㅇㅇ동 ㅇㅇㅇㅇ호로 바뀌어 그만큼 외워야 하는 수가 많아졌다. 모처럼 시골에서 올라와 자녀 집을 찾은 어르신들은 종이에 8자리 숫자를 적어 둬야만 겨우 집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손해지(24·여) 씨는 자신의 컴퓨터에 비밀번호 등을 따로 저장해두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한 ID와 패스워드, 그리고 비밀번호와 인터넷 뱅킹에 필요한 비밀번호 등 26개 항목을 저장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활용하고 있다. "인터넷 사이트에 가입할 때마다 새로운 ID와 패스워드, 비밀번호를 받는 바람에 일일이 기억하기 어려운데다 인터넷 뱅킹 경우 8자리로 숫자가 너무 많아 불가피하게 저장해두고 있다."며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곤란을 겪는 일을 없애기 위해 기록해둘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 비밀번호 만들기·관리 3가지 원칙
1. 누구나 유추할 수 있는 비밀번호는 피하라.
통장 비밀번호 경우 1234 등 번호가 연이어지거나 3333 등 같은 번호 네자리 등은 피해야 한다. 또 생년월일이나 전화번호 등에서 유추한 번호도 다른 사람들에게 유출될 가능성이 높다. 대신에 사원번호나 군번 등 자신만이 아는 정보에서 유추한 것을 비밀번호로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비밀번호를 주기적으로 바꿔라.
디지털 시대를 살려면 그만큼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아파트 출입문 경우 1개월마다 비밀번호를 바꿔주는 것이 현명하다. 또 인터넷 이용시 패스워드와 비밀번호도 3개월마다 변경한다.
3. 디지털도 아날로그를 못당한다.
휴대전화에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것과 동시에 노트나 컴퓨터에 전화번호를 따로 기록해두는 것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 디지털 기기도 기록을 못따라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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