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아가는 이야기] 푹푹 찌는 여름...늑대 가면을 썼으니

나의 태어난 곳은 경북 상주이다. 경부고속국도를 달려 서대구IC에 들어설 때쯤이면 저 멀리서부터 우방타워가 보인다.

8년째 근무를 하고 있는 "C&우방랜드"지만 지금도 우방타워를 보면 가슴이 설렌다. 이곳에서 내가 하는 일은 아르바이트 채용 및 관리업무이다. 1개월에 약 300명가량의 젊은이들과 함께 하니 우여곡절이 많을 수밖에 없다.

지난 여름이었다. "저기여, 인형 탈 쓰는 알바가 너무 하고 싶어서요. 꼭 한 번만 시켜주세요."하며 한 학생이 들어왔다. 마침 야간퍼레이드가 있어 캐릭터 알바가 필요하던 참이라 곧바로 공연팀으로 투입되었다. 캐릭터는 쉬워 보이지만 연출이 필요한 고난도의 일이다. 리허설 준비로 한창인 대기실에서 이 학생이 맡은 배역은 늑대였다. "누나!! 고맙습니다."하며 늑대 탈을 쓰고 재미있어 하던 학생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본격적인 캐릭터 행진이 시작되었을 때, 너무 긴장한 탓인지 모군은 배가 살살 아팠던 모양이다. 열대야로 푹푹 찌는 여름, 늑대 가면을 썼으니 얼마나 더웠겠는가. 손을 마구 흔들며 즐거운 척 행진을 하던 중 급기야 장이 탈이 나버렸다. 반쯤 돌았을까, 내내 가스를 뿡뿡 내뿜으며 행진을 하다가 그만 실례를 해버렸던 것이다. 그날 늑대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모든 캐릭터들이 늑대로 인해 공연을 망칠 뻔했었다. 그날 학생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고, 늑대는 세탁실로 직행을 하게 되었다. 그 후 늑대만 보면 입가에 작은 미소와 그 학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한여름 주말 한 식당으로 현장지원근무를 나갔다. 이곳은 파전과 동동주를 판매하는 야외매장이라 냉방시설이 없다. 더위에 지친 모군은 동동주를 보관하기 위해 비치된 대형냉장고에 3분만 들어가 있겠다며 들어갔다. 밖에서만 문을 열 수 있는 냉장고라 3분 뒤 문을 열어주기로 했었는데 깜박한 것이다. 오 마이 갓! 약 10분 뒤 문을 열었더니 모군은 싸늘히 얼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8년간 근무하면서 기뻤던 일, 슬펐던 일, 그리고 잔잔한 감동이 있었던 일 등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하면서 난 이곳에서 인생을 배운다. 창 밖에 푸른 은행나무가 보인다. 꿈과 희망을, 그리고 생활에 찌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음의 안정과 여유를 찾기 위해 찾는 이곳, 이곳에서 나의 열정을 올인하며 하루 하루를 보낸다.

강정남(대구시 북구 읍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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