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부채납? 억지채무?…논란 끊이지 않아

市 "요구않으면 특혜의혹"…건설사 "대구가 특히 심해"

▲ 아파트 사업자의 기부채납으로 건설중인 수성구 범어네거리 지하 인도. 2000년 이후 아파트 건립 붐이 일면서 지자체마다 기부채납 요구가 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아파트 사업자의 기부채납으로 건설중인 수성구 범어네거리 지하 인도. 2000년 이후 아파트 건립 붐이 일면서 지자체마다 기부채납 요구가 늘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파트 인·허가 과정에서 되풀이되는 기부채납의 '허용 범위'와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재원이 빈약한 지자체 형편을 볼 때 아파트 사업으로 번 돈의 일부를 공공시설 재원으로 사용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공감'을 얻지만 관행이 된 '기부채납 요구'가 행정의 투명성을 해치고 분양가 인상 등 부작용을 불러온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은 탓이다.

특히 여론의 주목을 받거나 이른바 돈이 되는 단지의 경우 기부채납을 하지 않으면 특혜 의혹을 사는 '모순 구조'가 굳어지면서 주택업계는 물론 공무원 사회에서조차 개선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법으로는 금지된 기부채납, 그러나 현실은(?)

@사례 1=건설교통부는 지난해 12월 '기부채납'과 관련된 보도 자료를 냈다. '시장·군수·구청장' 등이 아파트 사업계획을 승인하면서 사업자에게 강요하는 기부채납 요구가 '분양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주택법을 개정, 기부채납을 금지하겠다는 것이 골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은 같은 달 국회를 통과했으며 올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상태다.

따라서 앞으로는 청사부지(공공·문화체육시설)나 학교용지 기부채납, 승인 사업과 무관한 하천 공사비 등 부담, 아파트 진입 부분의 불필요한 가감속 차선 설치 요구 등이 법적으로 금지된다.

@사례 2=대구시는 지난 1일 북구 매천동 화물터미널 예정지(유통상업지역) 등을 3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변경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도시관리계획을 발표하면서 '전례가 없는' 보도 자료를 냈다. '이 지역은 앞으로 지구단위계획수립 시 주민들이 필요한 일정 부분의 공공시설을 사업시행자로부터 무상 귀속받아 지역주민에게는 편익을 제공하는 한편, 특혜 의혹도 불식시킬 계획이다.'는 내용.

문구상으로만 따지면 도시 계획상 토지 용도를 바꾼 것이 '특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대구시 한 간부는 "이번에 용도가 변경된 부지들은 예전부터 예정된 곳들로 지역 발전이나 인근 주민들의 민원 해소를 위해서도 변경이 필요한 부지들"이라며 "일부에서 '받은 것 없이 풀어줬다'며 자꾸 특혜 의혹을 제기해 이런 보도 자료가 나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결국 관행이 된 '기부채납'에 대구시가 발목을 잡힌 꼴이 됐다.

◆공공시설은 모두 기부채납으로(?)

대구에서 기부채납의 역사는 도심 확장과 함께 시작됐다. 도심화의 산물로 90년 들어 북구 침산동 제일모직과 수성구 수성4가 코오롱 공장 등이 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기부채납이 뒤따른 것.

두류공원 야외음악당과 침산동 오페라하우스 등이 기부채납의 결과물이다. 당시 대기업 공장들은 수십 년 대구를 기반으로 기업을 키워왔고 공장을 팔면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둔 만큼 대구시의 요구는 사회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요즘은 기부채납 대상 사업장 범위가 넓어졌고 요구가 좀 더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수성구 두산동 대우트럼프 단지는 현재 건설 중인 상동 고가차도 사업비 150억 원을, 범어동 두산 위브 더 제니스 단지는 지하철 2호선 통로 개설비와 구민 도서관 건립비 등으로 730억 원을 기부했다. 또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황금네거리 지하차도 건립비 200억 원은 이달 분양에 들어가는 두산동 sk 리더스 뷰 사업자가 내놓기로 한 상태.

건설사 한 임원은 "대구만큼 기부채납에 적극적(?)인 도시는 잘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며 "이런 추세로 가면 앞으로 들어서는 고가차도나 공원 등은 대부분 기부채납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지에서 분양을 준비 중인 일부 시행사들은 아예 수지 분석을 짤 때 예상 기부채납 액수를 미리 고려(?)하는 웃지못할 일들도 발생하고 있다.

◆기부채납은 과연 사업자 주머니에서(?)

기업이 번 돈을 지역사회에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문화가 정착된 서구 사회에서는 '기부 채납'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미국 프로 골프대회에서도 우승자는 대회가 열리는 도시에 상금의 10%를 내놓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을 정도. 그러나 한국의 '기부채납' 관행이 문제시되는 것은 돈을 벌기도 전에 기부채납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모 시행사 대표는 "원래 있던 부지도 아니고 알박기와 전쟁을 해가며 비싼 값에 사들인 땅을 두고 기부채납을 무조건 요구하는 것은 결국 분양가를 올리라는 말과 같다."며 "사업하는 사람이 손해보며 장사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고 했다.

실제 지난 몇 년간 기부채납을 한 단지들이 내놓은 금액을 분양가로 환산하면 단지별로 계약자 한명당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5천만 원까지 돌아가게 된다. 공교롭게도 기부채납 금액이 많았던 단지들은 분양가 상승 주범으로 지적되며 최고 분양가를 연이어 경신했고 주변에서 분양한 단지들은 '기부채납' 없이도 분양가를 올리며 '기회 이득'을 얻는 경우가 많았다.

또다른 시행사 관계자는 "기부채납 금액도 문제지만 이를 둘러싼 지루한 공방으로 '인·허가'가 길게는 1, 2년씩 지연되는 것"이라며 "미리 지불한 땅값의 금융 비용이 사업 지연으로 인한 기부채납 액수보다 많은 사례도 허다하다."고 밝혔다.

◆투명성과 형평성 있는 기부채납을

올 9월부터는 분양가 상한제가 실시된다. 이에 따라 분양가 승인권을 가진 지자체들은 분양 단지들의 '수지 분석표'를 돋보기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또 상한가 규정으로 예전처럼 시행사나 시공사가 아파트 분양을 통해 폭리를 취하는 구조가 원천적으로 봉쇄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분양가는 최대한 억제'하면서 '수익이 있는 곳에서 기부채납'을 받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설업체 관계자들은 "건축비가 제한되고 땅값도 감정평가를 통해 인정하는 만큼 분양가 책정을 통해 적정 이윤을 넘을 경우 기부채납을 받는 것이 옳다."며 "기부채납을 빌미로 미리 사업의 발목을 잡고 일부에서는 '특혜 시비'로 사업자를 궁지로 몰아넣는 관행은 대구 사회 발전을 위해서라도 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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