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자리에서는 흔히 잔을 부딪치며 건배 구호를 외친다. 어떤 내용인가에 따라 분위기가 확 뜨기도 하고 썰렁한 농담이 되기도 한다. '위하여!' 같은 고전적인 것에서부터 깜찍한 것, 듣기 민망한 것 등 별의별 유행어들이 나온다.
요즘 가장 인기 높은 것으로는 '당신 멋져!'가 아닐까 싶다. 이중적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말 그대로 상대방을 멋지다고 칭찬하는 것. 또 하나는 '당당하게, 신나게 살고, 멋지게 져주자!'는 속뜻을 담고 있다. 멋모르고 따라 외치던 사람들도 뜻을 알고 나면 "차~암 좋은 말이네"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멋지게 져주자'는 구절이 가슴에 와 닿는다나.
술자리용 유행어이긴 하지만 우리네 부끄러운 부분을 찌르는 말이다. 평소 우리가 얼마나 남에게 져주기 싫어하면 이렇게 술잔 부딪치는 자리에서 '져주자'고, '기왕이면 멋지게 져주자'고 합창하듯 다짐할까.
누구나 살다 보면 다른 사람들과 크고 작은 갈등이나 다툼을 겪을 때가 있다. 대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갈라진 틈이 봉합되고 흔적이 희미해져 간다. 하지만 어떤 것들은 끝끝내 사라지지 않고 우리 속에 고집스레 옹크리고 앉아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때로는 발을 걸어 우리 자신을 넘어뜨리기도 한다.
유난히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갈등을 푸는 것에 서투르다. "내 눈에 흙 들어가기 전엔 절대 노(No)", "죽으면 죽었지 먼저 사과 안 해"라며 막무가내로 버티려 들 때가 많다. 그러다 보면 쌓이고 쌓인 감정이 폭발하게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도 된다.
법정 스님은 "선택한 가난은 가난이 아니다"라며 '맑은 가난'의 미덕을 설파한다. 마찬가지로 이길 수 있음에도 져주는 것은 더이상 지는 게 아니다.
아들을 때린 사람들을 보복폭행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예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굴지의 재벌 총수가 쪽방 같은 곳에서 2천500원짜리 밥을 먹어야 하는 신세가 됐다. 20대에 재벌 회장이 됐으니 세상이 한참 눈 아래로 보이기도 했을 게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가 '져주기'의 미덕 한 꽁지라도 배웠더라면 이토록 수치스러운 불명예까지는 당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 친구가 로마의 트레비 분수 앞에서 써보낸 엽서가 묻고 있다. "인생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던가요?"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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