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차
- 沈復(심복)과 그의 아내 芸(운)에게
노중석
받쳐든 연잎 위에 하루가 기울 무렵
잔잔한 초여름을 일렁이던 그대 손길
피어난 연꽃 속에다 찻봉지를 놓더니,
꽃잎도 잠을 깰까 발꿈치 들고 가면
그윽한 향기 속에 밤새도록 잠겼다가
수정빛 아침을 열고 그대 앞에 받들 때,
해질녘 무료 속을 비집고 나온 연꽃
그대 옷자락 소리 들릴 듯 종요로워
차 향기 피안을 건너 오늘에 와 닿는다
옛 선비들이 글벗의 이름 밑에 즐겨 썼다는 '硯北(연북)'. '벼루맡에'라는 말 자체에 이미 아취가 넘쳐서요. 다만 그런 정경을 그려 보는 일만으로도 사뭇 느껍지요.
문득 이 말이 생각난 것은, 달포 전 벼루로 가득 찬 시인의 집을 다녀온 감동이 되살아난 까닭입니다. 겉가량으로도 시인의 벼루 수집은 어떤 癖(벽)의 경지를 넘어선 듯했는데요. 그가 빚은 시조의 행간에서 유난한 먹내음을 맡는다면, 그 또한 그런 연유라 할 것입니다.
淸末(청말)의 청빈한 선비였던 심복에게는 사랑스럽고 지혜로운 아내가 있었다지요. 수련은 저녁에 꽃잎을 오므렸다가 아침이면 다시 피어납니다. 심복의 아내 운은 저녁나절 수련이 꽃잎을 오므릴 때 찻봉지를 넣었다가 이튿날 아침에 꺼내 차를 달였다는군요. 그러면 연꽃의 향기는 말할 것도 없고, 밤새 스민 별빛과 달빛, 게다가 이슬의 기운까지 함초롬히 우러날 테지요. 멋도 멋이지만, 그 속에 녹아 든 정성이 참 놀라운 얘깁니다.
해질녘에 본 연꽃에서 떠올린 얘기가 '꽃과 차'의 관계로 되살아납니다. 피안을 건너온 차 향기가 아름답고 그윽한 사랑의 여운을 오래도록 세상에 남깁니다.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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