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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옥입니다] 음식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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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이 가까운 한 친척은 요즘도 가끔 초등학생 시절, 밭에 간 아버지를 위해 어머니가 마련해 주던 점심 이야기를 하곤 한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 흰쌀 한줌 넣고 끓이다 밀가루 수제비며 파란 부추를 넣어 살짝 한소끔 더 끓인 점심. 그걸 담은 주전자를 들고 논두렁·밭두렁길을 가노라면 살랑이는 바람결에 그 내음이 그렇게도 구수하더라고 했다. 한두 숟가락씩 얻어먹어본 그 초라한 점심이 할머니가 된 그녀에겐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네에겐 저마다 '익숙한 맛'이 있다. 안동 출신들은 음식을 할 때 날콩가루를 즐겨 넣는다. 칼국수는 물론 콩가루를 넣은 나물 무침에 콩가루 무국, 부추콩가루찜 등. 그들에겐 코에 콩가루 특유의 냄새가 맡겨져야만 식욕이 동하나보다. 경북 동해안의 밥식해도 가자미 등 생선과 무·밥을 섞어 삭힌 것인데 외지 사람들에겐 시큼털털할 맛일 뿐인데도 그들에겐 더 없는 별미다.

왠~지 그리워지는 '추억의 맛'도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조건반사처럼 생각나는 부침개를 비롯 봄날의 쑥털털이, 여름의 까끌한 입맛을 깨우는 매콤한 장떡, 막걸리와 풋 양대콩을 넣어 쪄낸 밀떡, 가을의 도토리묵, 겨울의 무밥…. 하지만 이런 음식들 중엔 이미 그 맛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것들이 많다. 음식은 그대로이되 우리 입맛이 변해버린 탓이다.

전 세계적인 다이어트 열풍 탓에 '먹는 것' 자체가 기피 대상 1호가 되고 있는 세상이다. 아플 때조차 식욕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겐 그것 자체가 고민 중 고민이다. 다이어트 클리닉마다 "제발 좀 식욕을 떨어뜨려 달라"는 요구로 넘치고 있다. 2005년 식약청 마약관리과 통계에 따르면 2001년 20억 규모에 그쳤던 식욕억제제(향정신성 의약품) 시장이 2004년엔 150억 원으로 4년 새 7배 이상 늘어났다. 날씬함을 위해'맛없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말이다.

이탈리아 국립연구소의 루이기 암브로시오 박사가 밥 안 먹어도 배부를 약을 개발했다 하여 화제다. 식사 전에 한 알을 먹으면 위 속에서 1천 배로 불어나 스파게티 한 접시 먹은 정도의 포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하루 식사를 단지 약 세 알로 때울 수 있다는 걸까. 분명 날씬해지기는 할 터이다. 하지만 먹는 즐거움을 빼앗긴 입은 어떻게 되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머니의 손맛의 추억은? 식탁에서의 갖가지 즐거운 풍경과 정겨운 대화는?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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