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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 시조 산책-이병기 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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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매어 놓고 떠나려 하시는 이날

어두운 새벽부터 시름없이 내리는 비

내일도 내리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

부디 머나먼 길 떠나지 마오시라

날이 저물도록 시름없이 내리는 비

저으기 말리는 정은 나보다도 더하오

잡았던 그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신다

갑자기 꿈을 깨니 반가운 빗소리라

매어 둔 짐을 보고는 눈을 도로 감으오

장맛비가 지짐거립니다. 이럴 땐 자칫 몸보다 마음이 먼저 구겨집니다. 한번 구겨지면 자꾸 구겨지는 마음. 구겨진 마음은 일부러라도 펴 말려야지요. 마음을 펴 말리는 데 시(詩)만한 게 있나요? 빨래집게로 빨래를 집어 널 듯, 구겨진 마음을 시의 집게로 집어 너는 겁니다.

'짐을 매어 놓고' 먼길을 떠나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처 붙잡고 싶지만, 우격으로 막을 수는 없는 사정인가 봅니다. 그런 심중을 헤아린 것일까, '어두운 새벽부터' '날이 저물도록 시름없이 내리는 비'. 아니 갔으면 하는 애틋함이 온종일 그 빗줄기를 다 세고 있습니다.

'잡았던 그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는 사람. 화들짝 놀라 깨니 밖은 '반가운 빗소리라'. 晝思夜夢(주사야몽). '매어 둔 짐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도로 눈을 감아 봐도 잠이 올 턱은 없지요. 이제 먼동이 트고 날이 들면? 사뭇 조바심을 치며 빗줄기를 돌려 세웁니다. '내일도 내리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

박기섭(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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